아듀,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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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네요. 50플러스 시민기자 활동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고요.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종종거리다가 시간이 흘러버린 것만 같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기사를 보내고 필요한 부분을 전달 받으며 활동을 해서일까요? 벌써 몇 개월이 지났는데 뭔가 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아쉬움이 남는다는 얘깁니다. 아무튼 이제 마무리를 할 시간입니다.

 

 

여러분께 고백하자면, 전 그냥 생을 '통과'하고 싶었습니다.

가능하면 세상에 어떤 인연을,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렇게 지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그건 함께 사는 세상에서 직무유기이기도 하더군요. 마땅히 해야 할 사회구성원으로의 역할은 피해선 안 되는 것이었어요. 더욱이 이젠 나이 오십이 옛날처럼 ‘지천명’이 아니라 갈 길이 여전히 아득한 세상이다 보니 같이 나눠 짊어져야 할 공동의 책임이라거나 과제 등에 대해서도 깨닫게 됐습니다. 더는 아무 것도 함께하지 않고 살아서는 안 되겠더군요. 애써 인연을 만들지 말라는 말에 귀 기울였던 사춘기 소녀를 벗어나야 했어요.

 

 

늦었지만 조심조심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고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그 늦음이 주는 좋은 것도 있으리라 위안하면서요. 50+시민기자도 그렇게 도전했습니다. 별로 사회활동이 없었던 터라 시민기자 활동은 세상과의 연결과도 같았습니다. 매번 낯선 일들을 만나고 기사를 쓰기 위해 그 낯섦을 들여다보며 조금씩 이해가 생기는 과정이 힘들지만 무척 즐겁더군요. 나와 같은 50+세대가 이렇게 열심히, 즐겁게,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가며 살고 있다는 건 위로와 힘을 주는 일이었어요.

 

취재를 위해 만난 분들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맨 처음엔 모델교실을 수강신청해 비대면으로 취재를 했습니다. 모델이자 연기과 교수인 선생님이야 전문가시니 멋짐이 당연한 일이었는데, 은색 단발머리를 한 시니어모델 김옥현 님 또한 정말 근사했어요. 바른 자세가 건강의 기본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도시여행해설가 전문봉사단과 함께 청계천을 걸었고, 사회적경제 펠로우십 참여자들의 열띤 회의도 참관했습니다. <50+강사가 간다> ‘서울 하천의 야생조류 만나기’를 좇아 중랑천에서 새들을 만나기도 했고, <50+자원봉사단> 혁신나눔단 조경활동가들의 해맑은 봉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죠.

 

오랫동안 호텔에 근무한 이력으로부터 노년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조해낸 웨딩쇼퍼는 참 멋진 일이었어요. 상대방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도 새삼 확인하게 됐죠. 과거에는 노인들이 경험으로 얻은 삶의 지혜를 젊은이들에게 나누고 전했습니다. 예컨대 농경사회에서도요. 축적된 지혜의 전달자로서 노인은 존경을 받았고 공동체에서 노인의 자리가 명확했죠. 세상이 급변하는 지금은 젊은이들이 더는 노인들의 삶에서 배울 무언가를 얻지 못합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노인들이 후대에게 하나하나 물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죠. 어쩌면 그래서 노인들을 공경하는 문화가 약화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나이듦이 존중 받기 위해서는 자신 안의 무엇을 익혀서 나눠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실패와 부족함을 통해서도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생의 역설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도 또 다른 ‘웨딩쇼퍼’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가득이나 출판시장이 어려운데다 코로나19까지 덮친 상황에서 올해 저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 또한 제 삶을, 제 안의 이야기를 나눠보는 여정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더군요. 누군가 책을 내는 일을 ‘산고’와도 비슷하다고 했던데 정말 무수한 상념들이 오락가락 하며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곤 했습니다. 때론 부끄럽기도 하고 세상으로 내보내는 책이 마치 ‘아이’처럼 제 운명을 어떻게 살아낼까 떨리기도 했어요. 책이 나온 후에도 쉽지 않은 시간이 이어지고 있지만 많은 것이 멈춘 코로나19 상황에서 또 다른 뭔가를 얻으려고 하기 보다는 자신 안의 무엇을 들여다보고 꺼내 나눌 수 있다는 건 의미 있고 바람직한 일 같습니다.

 

 

설렘으로 시작했던 2020년 50+시민기자 활동도 이렇게 안녕을 고합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 씨를 뿌린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가꾸는 일이 숙제로 남았습니다. 보잘것없지만 그럼에도 나서봅니다.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걸 이젠 알게 되었으니까요. 특히 저처럼 칩거형 일상을 살고 계신 50+가 계신다면 한 번 문을 두드려보세요. 나와서 묵은 먼지도 털어내며 새로운 힘과 의미도 얻으시길 기원할게요.

 

콘스탄틴 카바피의 시 한 구절, 우리 같이 나눠요. 우리는 여전히 항해중이니까요. 함께 응원하며 같이 걷고 싶습니다.

저도 이제야 뚜벅뚜벅 걸어갈 힘을 얻고 있답니다.

 

이타카로 가는 길을 나설 때

기도하라, 그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

 

 

 

 

[글/사진 : 50+시민기자단 이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