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턴>: 로버트 드 니로와 10 Up

 

▲영화 인턴의 장면들

 

영화 <인턴>을 보고 나오면서 문득 ‘이 영화의 감독은 분명 여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주인공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 분)는 혼자 살면서도 자신의 집과 주변을 매우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특히 회전식 넥타이 걸이와 잘 다려진 셔츠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는 걸 보는 순간 ‘아~ 이건 여자의 시각이 만들어낸 장면’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낸시 마이어스라는 꽤 나이(1949년생)가 있는 여자 감독이었다. 벤은 ‘바람직한 은퇴남’, 그것도 여자의 시각에서 본 바람직한 은퇴남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여자건 남자건 스스로를 잘 가꾸고 다듬어야 한다. 어떻게 가꾸고 다듬을 것인가? 마음은 물론 외모에도 적잖이 신경을 써야 한다. 자칫 내 나이에 무슨 멋인가 할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Clean up’과 ‘Dress up’, 즉 깨끗하게 잘 차려입고 멋을 내야 하는 것이다. 옷이 날개라고 하지 않는가? 특히 손자·손녀들의 경우 언제나 뛰어가서 안기고 싶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원할 것이다. 냄새가 나거나 지저분하면 뜨악해하면서 뒤로 물러서는 게 인지상정이다. 우중충한 집에서 우중충한 분위기로 지내고 있으면 자식들도 손주들도 선뜻 오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물론 논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깨끗하게 잘 차려입으라는 말은 아니다. 일하는 모습과 옷차림은 그 자체로도 보기 좋은 어른의 표본이니까. 수년 전 인터넷과 SNS상에 존경받는 노후를 위한 필수요건이라며 ‘7 Up’이 올라왔다. ‘Clean up, Dress up, Shut up, Show up, Cheer up, Pay up, Give up’이었다. 여기에다 필자는 ‘Open up, Listen up, Health up’의 ‘3 Up’을 덧붙여 ‘10 Up’을 만들어 은퇴강의 때마다 잘 써먹고 있다. 7가지도 많은 것 같은데 10가지면 너무 긴 것 아닌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식들은 물론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으려면 이 정도의 수고는 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순서를 잘 따라가면 외우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필자가 내놓는 ‘10 Up’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Open up, Listen up, Shut up, Give up, Cheer up, Clean up, Dress up, Show up, Pay up, Health up.’ 모두 쉬운 영어인 데다 우리말로 풀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마음의 문을 열고 남의 이야기는 듣고 내 입은 닫고 포기할 건 포기하고 웃는 얼굴로 깨끗하게 차려입고 다니자. 때로는 돈도 낼 줄 알고 건강도 챙기자.’

수첩 한곳이나 휴대폰에다 ‘10 Up’을 적어놓고 가끔씩 새겨보자. 아침에 일어날 때, 누구와 만날 때는 물론 뭔가 시무룩하고 만사가 귀찮을 때도 한 번씩 들여다보자. 마치 자신에게 주문(呪文)을 거는 것처럼 연습을 하는 것이다. 거울을 보면서 ‘Cheer up! Show up!’만 해도 오른손이 번쩍 올라가면서 자신을 스스로 격려해 밖으로 나가게 만들 수 있다. 그러려면 깨끗이 차려입어야 하고(Clean up, Dress up) 지갑도 챙겨야 할 것(Pay up)이고 한 바퀴 돌고 오면 마음과 건강(Health up)도 저절로 좋아질 것이다.

 

오랜만에 손자·손녀들이 온다고 하면 ‘10 Up’ 중 무엇이 필요할까? 깨끗하게 차려입는 것은 기본이다. 지난번 만났을 때 손주들에게 잔소리만 늘어놓은 것은 아닐까? 그래, 이번에는 마음의 문과 귀를 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입은 닫기로 하자(Open up, Listen up, Shut up). 동시에 웃는 얼굴(Cheer up)로 아이들을 대하면서 주머니의 문도 열어 맛있는 것도 사주고 슬쩍 용돈도 주면(Open up & Pay up) 더없이 좋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Open up’은 두 가지 뜻으로 사용할 수 있다. 마음의 문과 귀를 넘어 돈주머니를 열라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과 주머니의 문을 여는 어른을 싫어할 자식과 손주, 친구는 없을 것이다. 열어젖히면 닫고 있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상대방이 먼저 문을 열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문을 열면 행복이 더 크게 다가온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분석이다. 좀 손해 보는 듯 사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일일이 따지기보다는 웬만한 것은 이해하고 포기하고 넘어가야 한다. 부부 사이에도 부모·자식 사이에도 따지기 시작하면 피곤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Open up과 Give up은 서로 통하는 사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Give up’ 역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포기할 건 포기하는 Give up일 수도 있고 이웃에게 베풀고 살라는 뜻의 Give up일 수도 있다. 우연이겠지만 Give의 발음 ‘기브’는 한자어 ‘기부(寄附)’와 엇비슷하다. Give up을 ‘기부(寄附) 업’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나보다 못한 가족이나 이웃에게 베푸는 재미에 맛들이면 여느 재미에 못지않다고 한다. 돈이 아니더라도 체력과 재능 등으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기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Health up’은 10 Up의 가장 기본이자 핵심이다. 내가 건강해야 기부도 할 수 있고 마음의 문을 열 수도 있고 일과 취미생활도 즐길 수 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말이 나이 들수록 더 절실해진다고 한다. 하는 일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가면 지루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다. 내 건강을 내가 지키기 위해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문을 열고 박차고 나가자. 세상은 밖으로 나오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줄 것이다.

 

영화 <인턴>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벤은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회사의 부사장까지 지낸 성공한 월급쟁이로 퇴직한 후 나름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자녀들도 잘 자라서 독립했고 가끔 손자들을 보러 다니면서 요가와 화초재배를 취미로 즐기는 평범한 은퇴남이다. 하지만 3년 전 아내와 사별해서인지 잠들 때마다 뭔가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들자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면서 나선 것이 시니어 인턴이었다. 그렇다고 누구나 벤처럼 너그럽고 여유로운 데다 지혜와 위트도 겸비하고 잘생긴 것은 아니다. 더욱이 누구나 벤처럼 새로운 도전에 멋지게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전 그 자체가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Give up이라고 해서 이런 도전을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나라 관객이 400만 명에 달한 것도 벤의 그 멋진 도전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10 Up도 많다지만 마지막으로 하나 더 Up을 더한다면 그것은 ‘Challenge Up’이다. 끊임없이 죽을 때까지 도전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일 테니까.

 

 

 

글  최성환(崔聖煥)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