긱 경제시대, 이제는 중장년 재능을 활용한 창직이 떠오르고 있다. 창직은 그동안 쌓아온 경력, 지식, 노하우를 바탕으로 변화하는 세상에 맞게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활동이다. 중장년이 오랫동안 켜켜이 쌓아온 재능은 국가의 기술 자산이자 콘텐츠의 보고와 다름없다. 하지만 인생이모작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고귀한 재능은 쓸모없이 사장되거나 잊혀져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생애 100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자신의 기술과 노하우 재능을 살려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중장년이 늘어가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직사례자를 통해 인생2막을 직접 설계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통찰의 기회를 가져보자. 




디지털 장의사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온라인상에 남긴 흔적, 즉 ‘디지털 유산’을 없애주는 사람이다. 현재는 SNS에 남겨진 기록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기록까지 지워주는 일도 맡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개인의 기록뿐만 아니라 기업, 단체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 게시물이나 허위사실을 삭제하는 일도 한다. 개인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행복추구권을 보장해주며, 기업과 단체에게는 사회적 평판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 김호진 씨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악플(악성 댓글), 디지털 성폭력(디지털 기기를 이용하여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 몰카(불법 촬영) 등으로 고통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음을 직감하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 직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김호진 씨가 광고매니지먼트에 근무하던 시절, 한 광고에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출현한 일이 있었다. 해당 광고가 방영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를 향한 악성 댓글 공격이 이어졌고, 어린 소녀는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고통을 겪었다. ‘뭔가 도울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던 김 씨는 ‘인터넷에 떠도는 아이 관련 비방, 조롱 글을 비롯한 과거 사진과 동영상을 하나하나 삭제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우선 포털사이트에 삭제 요청을 하고 관련 글을 하나하나 지워나갔다. 일주일 만에 악성 댓글과 관련 자료를 모두 없앨 수 있었고, 어린아이 모델은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찾아갈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김호진 씨는 ‘잊혀질 권리’ 관련 사업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가치 있는 일임을 직감했다. ‘디지털 장의사’의 필요성을 몸소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 기록 삭제 쉽지 않아…IT전문가 고용해 삭제 프로그램 개발
김호진 씨가 디지털 장의사 창직을 고민하던 당시만 해도 SNS의 확산과 진화된 검색엔진들로 개인의 정보가 신상털기, 마녀사냥에 악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었지만 이를 막을 만한 법과 제도적 뒷받침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김 씨는 ‘잊혀질 권리’가 보편화돼 있는 선진국의 사례와 법안, 논문 등을 찾아보며 ‘디지털 장의사’의 청사진을 만들어갔다. 디지털 장의사의 필요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IT전문가를 고용해 디지털 기록 삭제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지금은 개인과 단체뿐만 아니라 기업의 평판 관리 및 삭제 업무 영역까지 확대해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불법 영상 촬영의 폐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관련 강의도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TV프로그램에 출연한 김호진 디지털 장의사/사진=이정원


처음 디지털 장의사를 창직했을 당시 온라인상의 개인정보 유출이나 악용사례에 관한 법과 제도적 뒷받침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실제 인터넷 기록을 삭제하는 일은 매우 힘든 작업이었다. 관련 정보가 어디에 얼마만큼 올라가 있는지 알기 어렵고, 설사 안다고 해도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은 전문가가 아닌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호진 씨는 과감히 IT전문가를 통해 디지털 기록 삭제 프로그램을 개발해냈다. 디지털 장의사가 하는 일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인정받게 되면서, 주변 시선은 돈이 되는 사업 혹은 편한 일처럼 보는 경향이 생겼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잊혀질 권리’는 생소한 분야여서 데이터도 없고, 자문할 곳도 없었다. 온라인에서 잊혀질 권리를 비즈니스화하는 데는 복잡한 법적·윤리적 쟁점들이 뒤따르기 때문에 아직 국내에서 법제화되어야 할 부분들이 과제로 남아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터넷과 SNS가 생활화되면서 온라인상에서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SNS의 활성화로 이제는 연예인이나 공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악플과 정보유출로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디지털 장의사를 유망직종으로 선정했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중요한 직업군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터넷과 SNS활동이 발달할수록 이를 이용한 범죄는 계속 늘어나고 있어 ‘잊혀질 권리’와 관련한 직종 역시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읽은 창직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직업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고, 또 그 시대가 원하는 시장의 수요에 따라 탄생된다. 바야흐로 지금은 SNS의 시대라 할 만하다. 유명인의 인기척도가 SNS의 팔로워 수를 통해 가늠되기도 한다. SNS는 자기자신과 상품, 기업 등을 홍보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온라인에 퍼져있는 악성댓글이나 원하지 않는 개인정보 유출로 고통을 겪는 사람도 생기게 되었다. 디지털 장의사는 바로 이러한 시대의 문제를 역으로 해결하면서 떠오른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창직을 고민할 때에는 대립적인 직무나 반작용으로 인한 업무를 예측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상기 이미지 및 원고 출처 : 라이프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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