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만난 사람 4편

큰형님 김사동 어르신의 "살라마리쿰"

 

김사동 어르신은 천리마택배의 어르신들 중 가장 연세가 많은 '큰형님'이다. 그는 올해 팔십대 중반을 지나고 있다. 미수(米壽)에 가까운 삶의 연륜이 만들어내는 초탈함일까? 아니면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역사의 격변기를 몸으로 헤치고 나오신 경험이 주는 기다림의 지혜일까? 일상 속 어르신을 모습은 한마디로 서두는 기색 없는 여유로움으로 가득하다. 천리마택배의 경력이 5년차인 베테랑이라지만 택배 일은 더러 무겁고 부피가 큰 물건을 끌어야 하는 고된 노동일 때도 있다. 하지만 어르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종일관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는다. 가끔씩 느긋한 목소리로  어르신만의 유머를 던질 때도 있다. '아재개그'에 가까울 때도 있지만 거북하지 않은 천연덕스러운 그의 유머는 듣는 사람을 웃음 짓게 한다.  

 

   

▲김사동 어르신(우)과 그의 수첩에 있는 메모 중 일부(좌)

 

그러나 여유롭다는 것이 허술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에 관한 한 어르신은 치밀하고 열정적이다. 일례로 어르신의 수첩에는 지하철역별로 가장 가까운 탑승 위치를 적은 메모가 깨알 같이 적혀 있다. 천리마택배에서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가장 큰 요령에 속한다. 엘리베이터에 가까운 차량에 탑승해야 물품 운반이 편리하고 신속한 배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요 거래처에 대한 세부 정보도 기록되어 있다. 어르신의 장점은 그런 자료를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표로 만들어 게시판에 붙여 동료들과 공유를 한다는데 있다. 입사한 지 얼마 안된 경험이 적은 신입동료들에겐 매우 요긴한 정보가 아닐 수 없다.

 

"쌀라마리쿰(쌀람알라이쿰)!"


아침이면 김사동 어르신은 사람들에게 가끔씩 낯선 언어로 유쾌하게 인사를 건네곤 한다. '당신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혹은 '당신에게 신이 내리는 평화가 있기를' 축원하는 아랍식 인사이다. 어르신이 유머처럼 구사하는 이 인사말은 그의 경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르신은  칠팔십 년대 우리 경제 발전사에 하나의 뚜렷한 이정표이기도 했던 중동 건설 현장에 있었다. 전기 관련한 기능을 가졌던 어르신은 한 건설회사에 픽업되어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되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해외 현장에 진출한 어르신에게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일의 강도나 모래바람의 사막 날씨에 앞서 언어 문제였다고 한다. 헬퍼(HELPER)인 제3국인들에게 작업을 지시·관리하며 그 결과를 외국인 감독관에게 판정 받아야 했으므로 언어적 소통은 필요 불가결한 요소였다. 어르신은 부족한 언어를 보충하기 위해 매일 영어 사전을 끼고 살았다. 일을 마친 저녁이면  동료들과 나누는 술 한잔의 재미도 접어둔 채 공부에 매달렸다. 사우디는 술이 금지된 이슬람국가였지만 솜씨 좋은 사람들은 어디나 있는 법이어서 빵을 가지고 밀주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원래는 일 년을 계약하고 떠났지만 어르신의 이런 성실함을 높게 산 회사에서 놔주질 않아 삼년을 넘게 일하게 되었다. 어르신이 계약을 연장 하며 돈을 벌어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2남2녀의 자식들만큼은 반드시 대학까지 가르치겠다고 스스로 세운 결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대에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아쉬움을 자식에게는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어르신 세대의 교육열은 몇 해 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칭찬한 바 있지 않던가.

 

그의 전기 기술은 한국전쟁 후 한 전기회사에 입사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한 가지 기술만 가지면 밥을 굶지 않는다는 말이 금과옥조의 충고로 여겨지던 가난한 시절이었다. 어르신은 남다른 눈썰미와 손재주로 남보다 앞서 일을 배워나갔다. 필요한 공부도 병행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을 어떻게 지나왔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당시에는 힘들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가난한 집안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가 험난한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선 꺾이지 않는 의지와 부단한 노력이 유일한 밑천이었던 것이다.

 

   


또한, 어르신은 시대의 도전에 한 번도 물러서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에는 자원입대 하여 서부 전선에서 싸웠다. 대규모의 전투는 없었지만 적의 잔당들과의 소규모 전투가 곳곳에서 있었다. 생과 사를 넘나들었던 그때의 경험은 그 이후 지금까지 어르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흔히 말하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그가 생존을 위해 터득한 지혜이자 실제적인 삶의 이력이 되었다.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현업에서 물러난 후 시작한 천리마택배에서도 어르신의 삶은 변함이 없다. 여전히 자신이 하는 일에 더 나은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실천한다. 평생에 걸쳐 몸에 밴 습관일 것이다.

 

 그의 열정어린 삶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살라마리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