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장덕신 어르신의 손에는 종종 무엇인가가 들려있다. 그것은 일을 하는 틈틈이 어르신이 사무실 근처 시장에서 구입한 것들로, 대부분 집을 꾸미거나 일상에 필요한 소품들이다. 화단에 심을 꽃모종이거나 옥상에 놓을 파라솔, 혹은 작은 야외용 탁자 등등. "좋은 걸 구하셨네요."하고 관심을 보이면 그 물건들이 필요한 이유와 용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그럴 때 어르신의 표정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자부심과 그 물건들로 인해 앞으로 벌어질 집안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어린아이와 같이 환해진다. 일생을 건축업과 인테리어 사업에 몸담아 온 어르신의 안목에 매우 가정적이고 자상한 성품이 더해진 결과일 것이다.

 

 


천리마택배 어르신들 대부분은 바쁜 일과를 치르느라 대부분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 요기를 하지만 몇몇 어르신은 아내가 싸 준 도시락을 가지고 온다. 장덕신 어르신도 그들 중 한 분이다. 어르신의 노년 건강을 배려한 반찬들이 오밀조밀하게 담겨진 도시락엔 수간호원 출신이라는 아내의 경력과 정성이 엿보인다. 부부 금슬도 유별나다. 가끔 아내와 통화를 할 때 곁에서 들어보면 어르신의 목소리는 은근하면서 나긋나긋하다. 지금 막 만남을 시작한 젊은 연인들의 다정다감함을 넘어선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지 6개월 만에 전격 결혼할 만큼 두 사람은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렸다고 한다. 아내는 일생을 관통하는 배우자이며 동시에 최고의 친구라며 어르신은 매우 뿌듯해 한다. 금혼식을 치른 지금도 일상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 아내와 산책하는 시간이라고 거침없이 말씀하시는 어르신을 보며 기자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장덕신 어르신의 고향은 북한이다. 평양 강흥리에 있는 성북국민학교 4학년까지 다니다, 1·4후퇴 때 부모님을 따라 월남하게 되었다. 기차 엔진 기술자였던 어르신의 아버지는 북한 당국의 필요에 이리저리 불려 다니다 탈출하여 전격적으로 피난을 결정하였다. 월남을 하여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수원 매산동이었다. 그곳에서 5년 정도를 생활하다 서울 청량리로 이사를 하여 지금까지 살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업하는 대신에 직접 사업을 구상하여 뛰어들었다. 건축업과 인테리어 사업이었다. 처음엔 어려움이 많았지만 어르신 특유의 근면함과 뚝심으로 극복해가며 30여 년이란 긴 시간을 운영하였다. 칠십 줄에 들어서면서 사업을 접었다. 체력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시력이 떨어지면서 인테리어에 필요한 세밀한 작업을 직접 관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12녀의 자식들을 모두 출가를 시켰으니 정신적 육체적 신경을 소진시키며 무리해서 사업에 연연할 필요도 없었다. 천리마 택배에 들어온 것은 어르신의 몸에 베인 근면함 때문이다. 집에서 쉬니 '좀이 쑤셔서' 운동도 겸할 겸 택했다고 한다.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어르신의 삶에도 한 가지 아쉬움은 있다. 바로 전쟁의 혼란 통에 갑작스럽게 떠나온 고향이다. 푸른 대동강 물과 비행장이 있던 능라도, 모란봉이며 을밀대의 모습이 지금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특히 친구들과 어울려 수영을 하고 제첩을 잡던 대동강에서의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렬함을 더해간다. 워낙 갑작스럽게 떠나온 터라 어린 시절 친구이나 이웃들의 소식은 지금도 전혀 알 수 없다고 한다.

 

 


기자는 어르신에게 고려 때 시인 김황원(金黃元)이 지은 시 하나를 읽어드렸다.

 

긴 성 한쪽에는 굽이굽이 물이요 (長城一面溶溶水)

큰 들 동쪽 끝에는 점점이 산이로다 (大野東頭點點山)

 

부벽루(浮碧樓)는 대동강변 청류벽에 높직이 들어서 대동강을 내려다보는 정자다. 김황원은 부벽루에 올라 오래 고민하였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대동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표현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끝내 울고 말았다. 시는 결국 위의 두 줄만의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시를 읽어드리고 어르신에게 물었다.

"대동강 풍경이 정말 그렇게나 아름다워요?"

그러자 어르신은 눈을 감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시처럼 굽이굽이 물이고 점점이 산이지."

"무척 가고 싶으신 가 봅니다."

어르신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가고 싶지. 언젠가 집사람이랑 꼭 가봐야지."

다짐을 하듯 힘이 실린 어르신의 말에 흥겹던 인터뷰 분위기가 잠깐 묵직해지기도 했다. 어르신의 어린 시절 추억으로의 귀향이 이루어질 날은 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