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길을 걸으면서 무언가 느끼고 체험을 한다. 의식이 있던, 의식이 없던, 걸으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명상하는 기분을 만끽하기도 한다. 그래서 걷는 여행을 사색하는 여행이라고 루소는 말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오랫동안 걸을 수 있는 둘레길에서 인성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산티아고순례길만 가더라도 학급단위로 찾아오는 학생이 많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그 부분을 짚어보려고 한다.

 

 

길이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얼마 전, 작은 대안학교로부터 특강 제안을 받았다.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옛길을 찾아 둘레길여행을 떠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길에 대한 경험과 준비에 필요한 이야기를 전해줘으면 한다는 취지로 요청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름 어른 대상으로 길에 대한 내 소신을 말하거나 길여행에서 해설하듯 둘레길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며 다녀본적은 많지만 학생들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상황이라 조금은 걱정되고 어떤 얘기를 해줘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내가 준비한 내용은 길여행가가 된 과정과 그 안에 내가 어떠한 꿈을 가지게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이에 더하여 길여행에 도움이 될만한 팁과 안전을 당부하는 말도 덧붙여서 해줬다. 2시간 가까이 지루했을 법한데도 귀를 쫑긋세우고 필기를 해가며 듣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에 좀더 많은 얘기를 해주지 못해 아쉽기만 했다. 특강을 마치고 학교 담당 선생과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 나또한 궁금했던 부분들을 질문하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이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은 대부분 나름 문제아(?)라는 타이틀이 달려 있다고 한다. 일반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왕따를 당하거나 아니면 자폐성향을 보이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러한 학생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착하고 눈망물이 초롱초롱한 어느 또래의 학생들과 달라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학생들이 순화되기 까지 숨겨져있는 이곳 선생님들의 노력과 독특한 수업방식이 있었기 가능한 일이였다.

 

 

길위에 학교, 길에서 배우는 학교

 

매년 2학기에 들어서면 선생님과 학생이 같이 옛길을 찾아서라는 장거리 걷기여행을 나선다고 한다. 이 자체가 학교의 교육과정이며 2학기 전체를 할애하고 있다. 지난해 까지만 해도 선생님들이 일정과 코스를 잡아주고 학생들이 따라나섰다면, 올해부터는 학생들 자체적으로 코스와 일정, 그리고 걷기코스 주변에 역사와 유적에 대한 자료조사까지 모두 소화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조사과정이 학생들 스스로 학습하고 준비하는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걷기여행 코스를 알려면 역사와 지리를 알아야 하는데 교과서가 아닌 인터넷검색과 서적 등을 통해 대신 공부를 하고 있는 셈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장거리걷기여행을 나서면서 처음에는 무리에서 이탈하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학생들 스스로 협의하고 도와주면서 다시 되돌아와 완주하게 되면서 점차 인성이 변화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모두가 학생들 앞에 선생님이 주도적으로 가르쳐서 된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변화할때까지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걷기여행이 끝날즈음에는 나름에 목표와 사회성을 겸비한 어른으로 점차 성장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이 진정한 길위에 학교모습인 것이다.

 

우리나라 둘레길을 관리하는 지자체 또는 법인단체에서도 길위에 아카데미를 표방하며 학생들 대상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대부분 해외의 청소년대상 걷기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효과가 있음을 알기에, 나름 체험프로그램과 걷기를 주제로 교육적 효과를 낼 수 있는 아카데미 또는 둘레길학교 등을 운영하지만 2, 3일 정도의 짧은 프로그램으로는 제대로된 인성교육을 할 수 없다. 게다가 우리내 엄마들은 이러한 길위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존재하고 좋다고 하더라고 교육적인(지혜교육이 아닌 지식습득을 위한 교육) 내용이 없으면 보내려 하지 않는다.

 

실제로 필자가 학생들 대상으로 단순히 장기 걷기를 하면서 휴식과 스스로 생각하고 명상할 수 있는 형태의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동호회에서 학부모 몇 명에게 이러한 것을 보여주니 대부분 회의적인 반응이다. 교육적이거나 체험활동, 교과를 대신할 수 있는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향을 틀어 외국인대학생과 함께하는 걷기여행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떻게냐고 다시 물어보면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얘기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청소년들에게 제대로된 인성을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진정한 길위에 학교는 앞서 말했던 장기간 길위에서 생활하면서 자연과 지역마을을 체험하고 서로간에 살을 맞대고 갈등과 협동을 경험해야만 한층 성숙해 질 수 있다. 둘레길을 관리하는 단체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다. 짧은 기간에 걷기여행과 여러 강사초빙을 통한 강연, 안전하지 않는 도로를 따라 힘들게 다니면서 교육적효과를 말하기에는 의문이 든다.

 

대안학교에서 한학기 정도의 시간을 들여 걷기여행을 준비하는 과정과 실제 길을 나서는 활동을 함으로써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지식이 아닌 지혜의 문이 열리고 사회성이 성숙해지는 것이다. 이제 이 학교는 한학기의 수업과정으로 머물지 않고 또 다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학과의 전체를 길위에서 할 수 있는 수업과정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무늬만 길위에서 하는 청소년대상 아카데미가 아닌 새로운 교육적 대안으로 삼을 수 있는 학교가 탄생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