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학재단 사회리더 멘토링 활동에 참여하는 대학생 멘티들과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하고자 몇 군데 활동 기관을 타진하던 차였다. 마땅한 활동 기관을 결정하지 못하던 차에 조병화문학관에서 상주 작가분이 뜻있는 분들의 문학관 생활환경 청결 봉사가 절실함을 다급히 알려왔다. 계획 중이던 프로그램을 뒤로 한 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폭염을 불사하고 8월 9일 (금) 조병화문학관(안성시 양성면 난실리 337)을 찾았다.

 

서울서 문학관까지는 편도 7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데다 37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라는 요일의 특수성과 휴가철이라는 계절적 상황이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여 봉사활동 자체에 대한 부담보다는 안성에 위치한 문학관까지의 이동하는 문제와 소요 시간이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다. 8시간의 봉사활동을 위해 서울서 안성까지 왕복 거리와 시간을 고려해보니 총 14시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오전 7시면 이미 기온이 27~ 28도에 육박하는 요즘 날씨를 고려하면 오전 8시 전에 문학관에 도착하여 일을 수월히 마치고 싶었다. 그러나 집에서 강남/용인 고속터미널, 다시 안성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이동 시간, 환승 시간 때문에 서둘러도 10시 이전에 그곳에 도착하기는 무리였다. 승용차로 합류한 몇 명의 대학생이던 개별적으로 (강남/용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안성에서 다시 시내버스로 문학관을 찾아온 대학생이던 모두에게 이중의 번거로움은 감안해야했다.

 

봉사활동이라는 명분으로 대학생들에게 무리가 아닐까 하는 우려 속에서 이들의 봉사활동에 임하는 진정성을 기대하며 폭염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마음 한편으로 이들이 혹시라도 교통 앱(App)으로 교통편을 살펴보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어 아예 활동에 불참한다고 하지나 않을까 하는 상상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불참자가 많아 봉사 자체가 무산되는 불상사만은 제발 일어나지 않기를 노심초사 신경을 쓰다 보니 봉사 전날 밤부터 정작 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조짐을 보였다. 고질병인 두통에 온몸이 붓고 통풍기가 시작된듯하여 당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통증을 가라앉히는 약을 먹고 잠을 청하니 새벽녘에 잠이 든 듯 알람시계에 의지하여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서둘렀다.

 

계획대로라면 그들을 위해 집에서 간단한 아침거리라도 마련해야했지만 두어 곳의 동네 김밥집의 개점 시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집에 남은 과자봉지 몇 개 챙겨 서둘러 약속 장소에 이르자 반가운 얼굴들이 밝은 미소로 나를 반긴다. 사전에 연주회다 취업 인터뷰다 집안 행사다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불참 의사를 밝힌 몇 명을 제외한 전인원이 번복함이 없이 새벽잠을 설치며 약속장소에 모습에 감동이 밀려왔다.

 

 

책임감과 성실성으로 봉사활동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 준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행동에 저조했던 나의 컨디션이 말끔히 가신 듯하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너흰 정말 멋져!’라고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평일 혼잡시간대에 출발한 터라 시작부터 교통체증으로 인한 원활치 않은 교통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안성 가는 2시간 길이 전혀 힘들지 않고 즐겁기만 하였다. 젊디젊은 청춘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던지... 차에 올라타자마자 폭염과 수면 부족으로 축 늘어져 있던 조금 전의 모습은 간데없고 활기차게 소통을 이어가는 모습에 안도하였다. 비좁고 한정된 공간에서 이들만의 각종 은어와 관심거리와 취향에 대해 가까이서 엿들을 기회가 내 나이에 언제 다시 가져볼 것인가? 나도 덩달아 흥이 나서 이들의 대화에도 끼고 맞장구를 치다 보니 어느덧 편운(片雲)동산에 도착하였다.

이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시인의 시를 음미하며 봉사에 임해야 할 것이다.

 

첫 만남

 

내 마음 나도 모르게 흔들리네요

내 가슴 나도 모르게 뛰네요

이것이 사랑인지 나는 몰라요

이것이 인연인지 나는 몰라요

부끄러워지네요 흔들리네요 흔들리네요

부끄러워지네요 나는 나를 잃네요

어지러워지네요 어지러워지면서 나를 잃네요

아 사랑인가요 뜨거워지네요

아 기쁨인가요 황홀해지네요

 

서울서부터 부지런히 서둘러 왔음에도 이미 해는 중천이라 30도를 웃도는 기온에 주차장에서 건물 입구로 들어가는 5분여 동안에 애써 차 안에서 유지했던 적정 체온이 급상승하더니 머리에서부터 주르륵하고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지친 걸음, 땀범벅인 채로 문학관과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우리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 한달음에 건물 밖으로 마중 나오신 오정교 학예사님과 손현숙 상주 작가도 옷이 온통 땀으로 얼룩져 있었고 넓은 챙 모자에 가려진 얼굴엔 굵은 땀방울이 빗물처럼 흘러 내렸다. 우리의 첫 만남의 설렘은 이렇게 편운 동산 초입에서 작열하는 태양 빛 아래 사라지고 이곳에서의 하루가 어떻게 펼쳐질지 그 전조를 알리는 낯섦이 대신했다.

 

 

문학관 입구

 

문학관 동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롯이 세워진 비석이 눈에 들어왔다. 시인이 유서로 남긴 제50번째 시집에 담긴 미리 작성된 묘비명이다. 물리학도에서 시인으로 전향한 조병화 시인은 소월, 만해, 윤동주와 같은 휴머니즘/휴머니스트 시인으로 기억되기를 희망하였다.

“지금까지 썼던 많은 시는 이 석줄을 쓰기 위한 연습이라고 생각해. 이 세상 마지막 남길 내 결정이고 철학이야.”

 

묘비문 

 

꿈의 귀향

 

나는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문학관은 1층에 2곳의 전시실과 2층에 세미나실, 편운재(1963년 어머니 별세 후 묘막으로 세운 후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함) 그리고 청와헌(1986년 퇴임 후 거처로 지은 사적 공간으로 일반에게 미공개 공간이다. 들판에 개구리 소리를 들리는 공간이라는 의미)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산 주변은 조병화 시인의 부친 묘소와 좀 떨어진 청와헌 오른쪽 양지바른 기슭에 어머니 진종 여사의 묘와 앞서간 부인 김준 여사의 묘 그 옆에 시인의 묘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이 3개 동의 별채로 구성되어 있고, 두 곳에 나뉘어 자리 잡은 묘소와 앞뒤 마당으로 조성된 편운 동산은 생각보다 큰 규모였다.

 

다음 호에 본격적으로 조병화 시인의 시의 세계와 그의 삶을 살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