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깨달음을 논하다/ 지운 지음/사유수>라는 책 표지에 부제로 ‘흐르는 물 위의 발자국’이란 글이 있다.

 

지난 해, 내가 30대 시절부터 몸담고 있는 나의 동아리 ‘끄덕끄덕’이 한국문예진흥원의 ‘신중년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에 선정 되었다. 그래서 2018년에는 ‘문학과 함께 한 달 살아보기’를 했고, 올해는 ‘자연과 함께 한 달 살아보기’와 ‘품격있는 고난과 함께 한 달 살아보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제목과는 조금 다르게 한 가지 프로그램은 3~4달씩 진행되는데 ‘자연과 함께 한 달 살아보기’는 바다를 만나며 명상을 공부했고, ‘품격 있는 고난과 함께 한 달 살아보기’에서는 연극을 공부하게 된다.

 

우리 ‘끄덕이’들은 1996년 부터 어린이 도서연구회의 ‘일산 동화읽는어른’으로 만났는데, 이제는 자녀들이 결혼을 하고 손자를 본 회원도 있다. 초창기에 우리는 어린이 책을 읽는 정규모임 주 1회 외에도 봉사와 행사 준비로 일주일에 서너 번씩 만났다. 때론 일주일 내내 만난 적도 많았다. 세월이 빠르게 흘러 먼 곳으로 이사를 간 회원도 생기고, 직장생활을 하게 된 회원도 많아져 수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 덕분에 한 달에 두, 세 번씩 만나고 있다.

 

지난 상반기엔 자연과 함께 한 달 살아보기의 일환으로 명상을 가르치시는 ‘지운’ 스님의 강의도 들었다. 지운 스님이 쓰신 책 중에 우리들이 함께 읽은 것이 바로 ‘명상 깨달음을 논하다’였다.

책은 수행에 대한 방법들과 깨달음과 자비선, 명상에 대한 방대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 내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지운 스님의 강의는 비교적 쉽고 명료하게 들렸는데 요약하면,

“명상의 수단은 생각이며 생각을 한자로 표현하면 ‘念(염)-현재, 想(상)-과거, 思(사)-미래’로 나눌 수 있다. 想思란 것은 현재가 빠져있으므로 병이 된다. 명상이란 것은 아무 생각 없이 멍한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현재로 두고 의식은 깨어 있도록 해서 집중하여 진실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잠재능력을 끌어 올릴 수 있고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명상에 대한 작은 지식도 없이 막연한 고정관념까지 있었던 나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 기분이었다. 맑은 차를 마시며 명상을 해보기도 하고, 눈을 감고 자비롭고 따뜻한 손길을 떠올리거나 내 몸에 샤워기로 물을 뿌리는 것을 상상하며 내 몸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 체온의 변화가 있는지 등을 느껴보는 경험, 맨 발로 걸으며 하는 명상, 춤을 추며 하는 명상 등은 나 자신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명상을 계속 하다보면,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행복한 길이 된다고 한다. 지운스님의 명상 강의가 좋아서 템플스테이와 걷기 명상 프로그램 등을 따로 신청한 ‘끄덕이’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좋은 느낌은 있었음에도 더 깊은 명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의 일생은 흐르는 물과 같은데 그럼에도 찍히지 않는 그 흐르는 물위에 발자국을 남기려고 애를 쓴다, 물위에 발자국이 남을 리가 없는데도 명예, 재산, 인맥, 가문, 학력 등의 발자국을 찍으려 평생을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는 스님의 지적이 옳은 말씀이란 생각이 들기는 한다. 탐욕과 분노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어렵고 힘든 삶을 이해하고 사랑과 연민으로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을 실천해야 한다는 자비선 명상의 뜻도 충분히 공감이 된다. 그럼에도 왜 나는 명상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맘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절실한 탐욕과 분노가 없는 대신 아직도 못 해본 것들에 대한 미련과 호기심, 그리고 작은 욕심이 있기 때문인 거 같다. 어쩌면 그것들이 결국은 ‘흐르는 물위의 발자국’일 수 밖에 없겠지만 아직은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지 않나 보다.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소망목록을 하나하나 적어보고 또 하나하나 실천하고 싶은 맘이 더 크기 때문이다. 때로는 더 나이 들기 전에 조금 서둘러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뭐 대단한 것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다 흘러가는 것이려니 하면서 마음의 평온만 찾는 건 아니다 싶다.

 

하얀 눈 위를 걷거나 진 길을 걸어 발자국을 남겨보기도 하고, 종이 위에 흔적을 남기거나 작은 생명들을 크게 키울 수도 있지 않을까? 젊은 날, 해야만 하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썼으니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더 많이 해도 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인생은 흐르는 물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더 빠른 속도로 흘러 사라지기 전에 그 물을 알맞게 사용해보고 싶다. 어쩌면 명상이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줄런지도 모른다. 다만, 명상을 하며 고요한 시간을 만들어 보려는 맘이 없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행을 하고 명상을 해서 깨달음을 얻은 분들이 “어허! 그게 뭔 궤변인고.”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