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는 남위 40도 부근을 흐르는 네그로강 이남에 있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최남단 지역을 말한다. 서남쪽 안데스산맥과 동쪽의 고원 및 낮은 평원으로 이루어지는데 아르헨티나와 칠레 양국에 걸쳐 있다. 파타고니아라는 명칭은 마젤란의 원정대가 거인족이라고 묘사했던 원주민을 가리키는 파타곤(patagón)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푸에르토바라스는 칠레 영토이고 바릴로체는 아르헨티나 영토라서 버스로 국경을 넘어야 한다. 1854년 비센테 페레스 로살레스가 건설한 푸에르토바라스는 장미의 도시로 불리기도 하는데 독일 이민자들이 많아서 독일의 전통과 문화가 진하게 남아 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부한 해산물 덕분에 도시 곳곳에 고급 호텔과 식당이 들어서 있다.

 


푸에르토바라스


바닷가에 가면 인솔자가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남녀라고 흉을 보는 동상이 있다. 내 눈에는 바다를 보며 우는 여인을 남자가 달래는 것처럼 보인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노래 가사처럼 여자는 떠나버린 연인 때문에 우는 것일까? 달래주는 남자가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니 울상인 표정도 아름답게 보인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으나 사진을 찍었다. 엄청나게 크다.

 


우는 여인을 달래는 남자

 

자갈치 시장처럼 포구에 접해 있는 앙헬모 시장 2층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꾸란또’는 주먹만 한 홍합과 각종 조개와 닭 다리와 감자를 넣고 끓인 탕인데 건더기가 많아서 찜 수준이다. ‘메를루사’는 대구의 일종인 흰 살 생선을 구운 것에 감자, 토마토, 양파 등을 올린 요리다. 좁은 탁자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꾸란또와 메를루사를 먹었다. 창밖을 보니 연어 대가리 같은 생선 부산물을 달라고 조르려는지 바다사자들이 자갈밭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앙헬모 시장의 바다사자

 

수산시장 좌판에서 연어를 고르면 바로 포를 떠서 담아준다. 갈고리로 까 주는 이름 모를 조갯살이 아주 달콤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연어와 조개를 샀다.  밤에 숙소에서 잔치를 벌였다. 레몬즙으로 만든 초고추장 맛이 혀에 착착 감겼고, 조갯살을 넣고 끓인 라면 맛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점심을 배불리 먹고 페트로루에 폭포를 보러 갔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동안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흐렸지만 물색은 짙은 에메랄드색이었다. 폭포라는 이름과 달리 낙차는 크지 않았지만 피톤치트 향을 마시며 맑은 물을 보는 것 자체로 힐링이 되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산을 더 탔을 텐데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페트로루에 폭포


까마를 타고 바릴로체로 갔다. 까마는 침대라는 뜻인데 우등고속버스 좌석을 생각하면 된다. 땅덩이가 넓다 보니 고속버스는 모두 2층이고 화장실이 있다. 일이 층 모두 일반 좌석만 있는 버스, 일이 층 모두 까마인 버스, 이층만 까마인 버스가 있다. 죽은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만 뻗친 채 끝없이 서 있는 유령의 마을 한가운데로 버스가 지나갔다. 2015년 칼부코 화산 폭발로 날아온 화산재 때문에 나무들이 모두 고사했다고 한다. 비까지 내려 음산함을 더했다. 언제쯤 다시 초록빛 숲을 이룰까?

 

칼부코 화산 폭발로 고사한 나무들


국경 통과를 위해 캐리어를 내려서 펼쳐 보이고 다시 싸는 게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바릴로체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고 중심가인 센뜨로 시비고로 갔다. 칠레에서 넘어왔기 때문에 환전부터 했다. 은행보다 거리 환전소 환율이 더 좋기 때문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거리에서는 탱고 공연을 비롯한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버스를 타고 호수를 보러 갔다. 리프트를 타고 전망대로 올라가야 한다. 하늘은 눈이 시리게 푸르렀고 하늘을 담은 호수 역시 한없이 푸르고 맑았다. 저 멀리 잔잔한 호수 속 섬에 아름다운 호텔이 있다.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은 풍경 속에서 잠들면 백마를 탄 왕자님이 올지도 모르고 야수로 변한 큐피드가 올지도 모른다. 하룻밤 묵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웠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나우엘우아피 호수

 

현지인 가이드가 일급수니까 마셔도 된다며 두 손으로 호수물을 떠서 마신다. 나도 따라 한다. 시원하고 달다. 햇살은 수면을 간질이고 시원한 바람은 내 뺨을 간질인다.

 


단맛이 나는 1급수를 가득 담은 호수

 

소금과 후추를 뿌려 숯불에 구운 아사도는 원주민인 가우초들이 먹던 아르헨티나 전통요리다. 숯불이나 그릴의 한 가지인 파릴라에 쇠고기 중에서도 특히 갈비뼈 부위를 통째로 굽는다. 다른 양념은 하지 않고 굵은 소금만 뿌려서 간을 맞춘다. 양고기도 있고 돼지고기도 있다.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를 강추한다. 커다란 덩어리 세 개가 한국 돈으로 10,000원이 안 된다. 아르헨티나는 소가 사람보다 1.2배 정도 많다니 초원에서 방목한 쇠고기를 실컷 먹자. 사료를 먹는 소는 되새김질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가? 물론 음료나 샐러드 등은 따로 주문해야 한다. 반드시 레드 와인을 곁들이자. 초리소라 불리는 소시지도 맛있다. 바릴로체에는 스위스 이민자가 많아 초콜릿 가게가 많다. 젤라또 아이스크림도 맛있으니 입가심으로 꼭 맛보기를.

 


아사도 조리과정

 


안심 스테이크 세 덩이가 단돈 만원

 

배를 채웠으면 광장에 있는 박물관에 가 보자. 동물 박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관람 후에는 호숫가를 걸어보자. 입구에 우리나라 장승을 닮은 나무 인물상이 여기저기 있다. 크기는? 물론 크다.

 


장승을 닮은 나무 인물상


밀려오는 파도를 보고 있자니 이곳이 호수인지 바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석양의 호숫가에서 다시 한번 마음을 비운다. 비우지 않아도 저절로 빈 마음이 된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파도치는 호수에 내려앉는 석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