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끝에서 던진 질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노후를 위해 꼭 이사를 가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닙니다. 큰 공사도 이사도 없이, 지금 사는 집을 오늘부터 훨씬 안전한 집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먼저 숫자 하나만 보고 가겠습니다. 노인 낙상 사고의 60% 이상이 바깥이 아니라 '집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집 안에서 가장 위험한 곳은, 다름 아닌 욕실이에요.

 





욕실, 집에서 가장 위험한 방

 

욕실이 왜 위험할까요. 우선 혼자 있는 공간이라 사고가 나도 아무도 모릅니다.

물기로 미끄러워 낙상도 잦고요. 그런데 낙상보다 더 무서운 게 있습니다. 히트쇼크입니다.

 

따뜻한 이불 속에 있다가 새벽에 차가운 욕실로 들어서는 순간, 혈관이 급격히 수축하면서 혈압이 치솟습니다. 이때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이 옵니다일본에서는 히트쇼크 사망자가 한 해 17천에서 2만 명, 교통사고 사망자의 네 배에 이른다고 해요. 한국은 별도 통계가 없을 뿐,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이건 저에게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5년 전, 제 어머니가 새벽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셨어요. 그 뒤로 오른쪽 팔다리를 쓰지 못하셨고, 언어와 기억을 잃으셨습니다. 한순간의 일이었어요. 한참 뒤 공부를 하다가, 그게 히트쇼크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욕실 천장에 온풍 기능이 있는 환풍기를 다는 것. 인테리어 계획이 있다면 욕실 바닥에 난방 배관을 까는 게 최선이고요으슬으슬한 욕실, 그 온도 차 하나가 생사를 가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짚겠습니다. 지금 댁의 욕실 문은 어느 쪽으로 열립니까.

거의 모든 한국 아파트 욕실 문은 '안쪽'으로 열립니다. 그런데 사람이 욕실에서 쓰러지면, 그 몸이 안으로 열리는 문을 안에서 막아버려요. 밖에서 가족이 문을 열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고령자를 배려한 설계에서는 미닫이문이나 밖으로 열리는 문을 권합니다. 리모델링할 일이 있다면 꼭 기억해두세요.

 



빼고, 더하고, 바꾸기

 

이제 큰돈 들이지 않고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세 가지로 나눠 말씀드리겠습니다. 빼고, 더하고, 바꾸기입니다.

 

먼저 '빼기'입니다.

첫째문턱이에요.

방과 거실 사이 2~3센티미터 그 턱에, 발을 끌며 걷게 되는 노년의 발이 걸립니다. 완전히 들어내기 어렵다면 완만한 경사 문턱이나 고무 경사 패드로 바꾸세요.

둘째, 바닥의 장애물전선, 카펫 끝자락, 화분을 치우세요.

셋째, 높은 선반의 물건을 내리세요. 의자를 밟고 올라가다 떨어지는 사고가 의외로 많습니다. 자주 쓰는 물건은 허리에서 눈높이 사이, 이른바 '골든 존'에 두세요.

 

다음은 '더하기'입니다.

가장 급한 건 욕실 손잡이예요. 변기 옆 ''자 손잡이 하나면 앉고 일어서는 일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샤워기 옆과 욕조 안에는 ''자 손잡이를 다세요.

높이는 바닥에서 75~85센티미터, 굵기는 손에 쥐기 좋은 32~38밀리미터가 적당합니다.

요즘은 LED 조명이 들어간 손잡이도 있어 밤에도 위치가 한눈에 보여요.





그리고 조명입니다. 노년의 눈은 젊은 사람보다 서너 배 밝은 빛이 필요해요.

특히 위험한 게 밤에 화장실 가는 길입니다. 잠이 덜 깬 데다, 나이가 들면 갑자기 일어설 때 핑 도는 기립성 저혈압까지 겹치거든요. 그 상태로 어두운 방을 걷다 작은 문턱 하나에 발이 걸립니다. 그래서 침실에서 화장실로 가는 동선에 센서등을 달아두면, 움직임을 감지해 자동으로 불이 들어와 어둠 속에서 스위치를 더듬다 넘어지는 일이 사라집니다.

 

여기에 미끄럼 방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욕실 바닥엔 미끄럼 방지 매트, 욕조 안엔 고무 깔개를 깔고, 기존 타일 위에 붙이는 방지 스티커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마지막은 '바꾸기'입니다.

가스레인지를 인덕션으로 바꾸시길 권합니다. 시력이 떨어지면 가스레인지의 파란 불꽃이 잘 보이지 않아서, 켜진 줄 모르고 손을 대거나 꺼진 줄 알고 가스만 트는 사고가 생기거든요.






손잡이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손잡이 다는 걸 꺼리세요. "요양원처럼 보인다"는 거죠. 그런데 요즘 욕실 손잡이는 굉장히 세련되게 나옵니다. 건강할 때 미리 달면 그냥 인테리어예요. 나중에 꼭 필요해져서 달면, 그제야 '노인 표시'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현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벤치 하나만 두면 앉아서 신발을 신을 수 있어요.

한 발로 서서 균형 잡다 넘어지는 위험이 사라지고, 외출이 편해지면 더 자주 나가게 되고, 자주 나가면 사람을 만나 사회적 연결이 유지됩니다. 작은 벤치 하나가 만들어내는 변화치고는 꽤 크죠.

 



빈 방에, 목적을 주세요

 

여기서 1회에 이야기했던 '쓰지 않는 방'으로 잠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자녀가 떠난 빈 방을 창고로 방치하면, 그 방은 사람을 묘하게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정리되지 않은 빈 공간이 '해야 할 일을 못 하고 있다'는 막연한 부담으로 다가오거든요.

그게 쌓이면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해법은 비우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방에 '목적'을 주는 거예요.

오래 미뤄둔 운동을 위한 방, 늘 갖고 싶던 작업실, 제대로 된 서재. 평생 거실 소파 한 자리가 전부였던 분이 처음으로 '나만의 방'을 갖게 되는 겁니다.

쓰지 않던 공간이 짐이 아니라,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를 위한 공간이 되는 거죠.

짐을 덜어낸 자리를 나를 위한 쓰임으로 채우는 것, 그것이 노후의 집을 다시 살아 있게 만듭니다.






집은, 나이 든 몸의 의수이자 의족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공간은 사람의 마음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텅 빈 방, 정리되지 않은 공간은 무의식적으로 무기력을 부르고, 잘 정돈되고 안전한 공간은 그 자체로 사람을 일으켜 세웁니다.

 

잘 설계된 집은 나이 든 몸의 의수이자 의족입니다.

눈이 어두워지면 밝은 조명이 눈을 대신하고, 다리에 힘이 빠지면 손잡이가 다리를 대신하고, 기억이 흐려지면 명확한 동선이 기억을 대신해줍니다공간이 내 한계를 조용히 받쳐줄 때, 우리는 훨씬 더 오래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세 번에 걸쳐 드린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노후의 집은 더 넓은 집이 아니라, 나를 끝까지 지지해주는 집입니다.

그리고 그 집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 당신이 사는 그 집에서 시작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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