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 오전 7시, 한강 반포지구 계단 아래에 스무 명 남짓이 모인다. 스무 살 대학생부터 예순을 앞둔 사람까지 섞여 있다. "은정 님, 오늘 페이스메이커 부탁해요" 누군가의 외침에 48세 이은정 씨(가명)가 손을 들어 답한다. 그가 22년 동안 제약회사 영업조직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이 모임에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다. 이들이 아는 것은 딱 두 가지다. 그가 5킬로미터를 35분에 뛴다는 것, 그리고 뒤처지는 사람을 절대 혼자 두지 않는다는 것.
2년 전 그는 휴대전화 연락처를 넘기다 손을 멈춘 적이 있다. 저장된 이름은 4,800개가 넘었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에 "뭐해?"라고 부담 없이 보낼 이름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부분 거래처, 전·현직 동료, 오래 연락이 끊긴 동창이었다.
연락처는 가득한데, 토요일에 부를 이름이 없다?
중년의 인간관계는 대개 두 기둥 위에 서 있다. 일로 만난 사람과 과거를 공유한 사람이다. 두 기둥 모두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

직장 동료와의 관계는 '역할'이 매개다. 같은 프로젝트, 같은 상사, 같은 고민이 대화를 채운다. 역할이 사라지면 화제도 함께 사라진다. 퇴직한 선배와의 첫 식사는 반갑지만 세 번째 식사는 어색하다. 공유할 현재가 없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친구와의 관계는 '과거'가 매개다. 편한 관계지만 중년에 접어들면 다른 변수가 끼어든다. 누구는 임원이 되었고 누구는 명예퇴직을 했다. 누구의 아파트는 올랐고 누구의 아이는 어느 대학에 갔다. 비교할 마음이 없어도 비교는 공기처럼 스며든다. 동창회에 발길을 끊은 사람들은 흔히 "그냥 피곤해서"라고 말한다. 그 피곤의 상당 부분은 이 보이지 않는 계산에서 온다.
그렇다고 관계를 줄이는 것이 답은 아니다. 바꿔야 할 것은 관계의 '매개'다. 역할도 과거도 아닌, 지금 내가 좋아하고 궁금해하는 것을 매개로 한 연결이 필요하다.
약한 연결이 더 멀리 데려간다
미국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는 1973년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주장은 직관과 반대였다. 새로운 정보와 기회는 가까운 사람보다 느슨하게 아는 사람을 통해 더 자주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듬해 펴낸 『일자리 구하기(Getting a Job)』에서 그는 지인을 통해 이직한 전문직·관리직 종사자를 조사했다. 그 지인을 '자주' 만났다는 응답은 16.7%에 그쳤다. 나머지는 '가끔'(55.6%) 또는 '드물게'(27.8%) 만나는 사이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가까운 사람들은 나와 같은 곳에서 같은 정보를 듣는다. 친한 친구 열 명이 아는 것은 대체로 나도 이미 아는 것이다. 느슨하게 아는 사람은 다르다. 그는 내가 모르는 세계에 한 발을 딛고 있다. 약한 연결은 다른 세계로 난 창문이다.

약한 연결의 힘은 기회에만 있지 않다. 사회심리학자 질리언 샌드스트롬과 엘리자베스 던은 2014년 연구에서 한 가지 사실을 확인했다. 사람들은 평소보다 약한 연결과 더 많이 교류한 날에 더 높은 행복감과 소속감을 느꼈다. 카페 직원과 눈을 맞추고 몇 마디 나누는 것만으로 기분이 나아진다는 후속 실험도 있다. 우리의 정서는 소수의 깊은 관계만이 아니라 다수의 가벼운 관계에 의해서도 지탱된다.
'이해관계 없음'이 아니라 '계산하지 않음'
이런 관계를 흔히 '이해관계 없는 만남'이라고 부른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그라노베터가 보여주었듯 느슨한 연결은 실제로 일자리와 정보와 기회를 가져온다. 이익이 없는 관계가 아니다.
차이는 계산에 있다. 명함을 주고받는 자리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저울질한다. 이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 나보다 위일까 아래일까. 관심사로 만난 자리에서는 그 저울이 작동할 근거가 없다. 상대의 직급도 연봉도 모르기 때문이다.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어떤 책의 어느 문장에 밑줄을 그었는지, 오르막에서 어떻게 숨을 고르는지뿐이다. 계산하지 않고 만났기에, 역설적으로 뜻밖의 기회가 오간다.
미국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이런 관계가 오가는 공간을 '제3의 장소(Third Place)'라고 불렀다. 집도 일터도 아닌 곳, 사람들이 지위와 무관하게 편하게 드나드는 곳이다. 예전에는 동네 이발소와 복덕방, 새벽 약수터가 그 역할을 했다. 지금은 독서 모임, 러닝 크루, 동네 사진 동호회, 사이드 프로젝트 팀이 그 자리를 채운다.

느슨해도 오래가는 모임의 세 가지 공통점
첫째, 함께 바라보는 대상이 있다. 책, 코스, 작품처럼 사람이 아닌 대상이 가운데 있어야 대화가 서로의 신상으로 흐르지 않는다.
둘째, 반복되는 리듬이 있다. 격주 목요일 저녁, 매주 토요일 아침처럼 주기가 정해져 있으면 억지로 관리하지 않아도 관계가 유지된다.
셋째, 수평의 규칙이 있다. 닉네임을 쓰거나,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거나, 직업을 묻지 않는 것이 암묵적 원칙인 모임이 오래간다.
'내가 끼어도 될까' 망설이는 당신에게
여기까지 읽고 "러닝 크루나 독서 모임은 젊은 사람들 얘기 아닌가"싶은 분도 있을 것이다. 중장년이 커뮤니티에 선뜻 발을 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대개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색해서다. 나이 때문에 분위기를 깰까 봐, 자기소개를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한 번 가보니 겉도는 느낌이 들어서 그만둔다. 이 장벽을 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① 나의 관계 지도 그려보기
지난 3개월 동안 한 시간 이상 대화를 나눈 사람을 모두 적는다. 그리고 회사, 학연·지연, 가족, 관심사의 네 칸으로 나눈다. 앞의 두 칸은 빼곡한데 마지막 칸이 비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빈칸을 눈으로 확인하는 데서 시작한다.
② 문턱 낮은 곳부터 탐색하기
서울시50플러스재단 같은 중장년 지원 기관의 커뮤니티는 비슷한 세대가 모여 있어 첫걸음의 문턱이 낮다. 공공도서관 독서 동아리는 비용 부담이 없고 연령대가 넓다. 조금 익숙해지면 모임 플랫폼이나 동네 걷기·러닝 모임으로 반경을 넓힌다. 처음에는 같은 세대가 있는 곳에서, 다음에는 세대가 섞인 곳으로 옮겨가는 순서가 부담을 줄인다.
③ '세 번 규칙' 지키기
첫 번째 모임은 누구에게나 어색하다. 두 번째에는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생기고, 세 번째에는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생긴다. 계속할지는 세 번 나간 뒤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 자기소개는 직함 대신 관심사로 한다. "○○회사 부장입니다" 대신 "요즘 조선 후기 역사책을 읽고 있는 이은정입니다"라고 말해 보는 것이다.
④ 가르치지 말고, 역할 맡기
가장 중요한 원칙은 가르치려 들지 않는 것이다. 중년이 커뮤니티에서 불편한 존재가 되는 순간은 대개 묻지 않은 조언을 할 때다. 경험은 요청받았을 때 꺼내면 된다. 조언 대신 역할을 맡자. 모임 기록, 장소 예약, 신입 회원 안내처럼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는 작은 일들이다.
오랜 조직 생활로 몸에 밴 성실함이 가장 빛나는 곳이 바로 여기다. 이은정 씨가 러닝 크루에서 신뢰를 얻은 것도 경력 덕분이 아니었다. 매주 마지막 주자 곁을 지킨 덕분이었다.
느슨하기에 오래간다
느슨한 연대는 깊지 않다. 서로의 가정사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 곁에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한계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바로 그 느슨함 덕분에 이 관계는 부담 없이 오래간다. 기대가 크지 않으니 서운할 일이 적고, 의무가 없으니 도망칠 이유도 없다.
인생 2막의 동료는 같은 회사 명함을 가진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 같은 책의 같은 문장에서 멈춘 사람, 같은 오르막에서 함께 숨을 고른 사람이다. 그들은 나의 과거를 묻지 않고 지금의 나를 본다.
일주일에 한 명씩만 새로운 이름을 알게 되어도, 한 해면 쉰 개 남짓한 이름이 쌓인다. 대부분은 스쳐 가겠지만, 그중 몇은 남아 조용히 다음 장을 함께 쓰게 될 것이다.

요즘 이은정 씨의 연락처에는 이름 대신 닉네임으로 저장된 번호가 늘고 있다. 토요일 아침 "오늘 나와요?"라는 메시지가 먼저 오기도 한다. 그 메시지를 받을 때면 명함을 주고받던 시절에는 몰랐던 소속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해서가 아니라, 그저 거기 있어서 반가운 사람이 되었다는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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