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 핸드폰을 두고 나왔다

핸드폰을 두고 나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부터 하루종일 안절부절못한다. 그 옛날엔 편지로 안부를 전했으며, 전화기 한 대로 온 가족이 사용했는데, 한 몸 같은 핸드폰을 두고 온 날에 편지, 전화, 만남의 장소를 생각해본다.

 

편지

여름방학 숙제로 편지를 썼다.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을 바꿔 쓰는 바람에 나에게 다시 돌아온 웃지 못 할 일도 있었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학교에서 국군장병에게 위문편지를 대대적으로 쓰라고 했다. 그런데 휴가 나온 선배가 말하기를, 100명이면 100명 모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군인 아저씨께’로 시작한단다. 자기가 어릴 때 썼던 그 문구 그대로라며 푸념했다.

 

숙제나 위문편지는 의무감이고, 연말에 친구 집에서 만드는 크리스마스카드는 즐거운 시간이다. 금색 은색 풀로 선을 긋고, 칫솔에 흰색 물감 묻혀서 빗으로 긁어 종이 위에 눈송이가 흩어지도록 뿌렸다. 루돌프 스티커와 산타할아버지 수염에 솜을 붙이고, 안에 속지를 접어 넣고 카드를 마무리한다. 봉투에 올해의 크리스마스 ‘씰’을 붙여서 폼이 났다.

 

전화

어른들은 전화요금을 아껴야 한다며, 용건만 간단히 하라고 늘 주의시키셨다. 그 핑계로 친구 집으로 달려가서 이야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친구한테 전화를 걸 때 어른이 받으시면 반드시 이름과 용건을 밝혀야 하는 에티켓도 지켜야 한다. 전화기 자리는 항상 TV 옆이다. 덕분에 통화 내용은 가족 모두와 공유한다. 그래서 그런지 무선전화기가 나와서 내 방에서 통화하는 기쁨이 배로 컸다. 

 

어디서 만날까? 장위동 ‘국민은행’에서 보자

친구들과 집 근처에서 놀거나 돈암동으로 나갔다. 주로 장위동의 할렐루야 문방구, 장석교회 앞, 동방고개에서 만났지만 그래도 만남의 장소를 꼽으라고 하면 역시 장위동 ‘국민은행 앞’이다. 장위동 국민은행은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어느 해인가는 폭설로 버스가 고개를 못 올라와서 친구들이 걸어서 등교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32번, 35번, 34-1번 버스를 타고 시내 나가기 쉬웠고, 장위시장이 가까워서 동네 마실 다니기도 좋았다.

 

1990년 만남의 장소가 있고, 핸드폰은 없다

대학 친구들은 “어디를 알고 있니?”를 묻고, 지하철 출구 번호와 빌딩과 상호를 물으면서 공통의 지점을 찾으려고 애썼다. 때로는 일반적인 만남의 장소인 신촌 ‘독수리 다방’, 강남 ‘뉴욕제과’, 종로 ‘종로서점’, 종로3가 ‘단성사’, 대학로 ‘파리크라상’, 돈암동 ‘태극당’에서 만난다. 여기에서 일단 한차례 모인 다음에 이동한다. 장소와 시간을 누군가 잘못 알고 있으면 곤란해지기 때문에 여러 번 확인해야 한다. 약속한 사람이 올 때까지 약속 장소에서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 핸드폰이 없기 때문이다.

 

2022년 만남의 장소는 필요 없고, 핸드폰이 있다

평점이 높은 음식점을 검색해서 장소를 정한다. 지금은 중식, 일식, 한식, 양식 메뉴와 지하철역이 결정되면 바로 네이버로 검색한다. 장소를 정하는 과정은 간단해지고, 분위기 좋은 맛집은 취향과 기분에 따라 다양하게 누릴 수 있다. 좋기만 해야 하는데 아쉬움과 허전함이 남는 이유는 만남의 장소와 기다림의 여유를 잃었다. 핸드폰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때 만남의 장소로 유명했던 독수리 다방, 뉴욕제과, 종로서점, 단성사, 파리크라상, 태극당 모두 사라졌다. 오랜 시간 그 지역의 대표 장소가 무너졌다. 그런데 외형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곳을 찾았던 기다림과 사연도 추억도 함께 지워졌다. 그 자리엔 새로운 장소가 들어서고 있으며, 그보다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예전보다 편리하고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일까? 

 

172번 버스를 타고 장위동 국민은행을 지난다. 핸드폰을 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주머니가 서 있는 모습에, 나의 장소가 살아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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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장위동 국민은행과 2022년 장위동 국민은행 ⓒ 50+시민기자단 우은주 기자

 

 

50+시민기자단 우은주 기자 (wej25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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