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송구영신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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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날개에서 ‘품개’로

연륜의 훈장으로 새날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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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짧아지고 밤이 점점 길어진다. 일 년 중 밤이 길다는 동지가 달력에 있고 감사의 선물을 주고받는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고 있다. 이때쯤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연말이 되면 항상 ‘올해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고 말한다. 어려운 일이 많았던 해란 뜻이다. 이 나이 먹도록 살다보니 어느 한 해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평생 다사다난한 해였다. 그런데 금년은 정말 다사다난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삶을 경험했다. 지금까지 이런 생활은 없었다.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였다.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외활동이 줄어들어서 해 놓은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그런 건 아니라니 조금 위로가 된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이라는 말에 수수께끼 하나 내겠다. 50+ 에게 많으면 많을수록 즐겁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이’다. 어릴 때는 떡국을 많이 먹었다. 왜, 떡국을 먹으면 그만큼 나이를 먹으니까. 그래서 떡국을 많이 먹고 얼른 어른이 되어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려고 했다. 내 마음대로 살고 싶었다. 그런데 어른이 됐다고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던가. 안되는 게 더 많았다.

 

 

어릴 땐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되는 것이지만, 어른이 되어서 나이를 먹으니 늙어지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어 슬프다. 늙음은 슬픈 것인가. 우리는 경로사상이 있는데 왜 슬플까. 젊음은 긍정적이고 늙음은 부정적일까. 젊음은 아름다움이고 늙음은 추한 것일까.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에서의 대사다.

 

백발의 노신사가 전철을 타셨다. 승객이 제법 많았다.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니 자신보다 젊은 것 같은데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경로석엔 이미 노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 노신사는 다음날에도 전철을 타셨다. 멋진 옷을 입고 보니 또래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한 학생이 자리를 양보했다. 기분이 불쾌했다. ‘아니, 내가 늙어 힘없어 보인단 말인가.’ 그렇다. 똑같은 사람인데, 마음에 따라 기분이 달라졌다. 그 노신사는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나이야~가라’로 들리니까. “한 손에는 막대를 잡고, 또 한 손에는 가시를 쥐고서 늙어가는 것을 가시(가시덩굴)로 막고, 오는 백발은 막대기로 치려고 하였더니, 어느새 백발이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늙어감을 한탄하는 고시조이다.

 

희노애락, 춘하추동, 생로병사는 자연의 이치이다. 섭리이다. 인간이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문제이다. 이 4가지는 서열도 없고 계급도 없다. 춘하가 높고 추동이 낮은 것이 아니다. 오직 청춘만이 삶에 의미가 있고 나머지는 삶의 여분인 것이 아니다. 인문학자 고미숙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계절의 운행이 만물을 낳고 기르듯이, 인생 또한 생로병사의 리듬이 있다. 인생의 매 순간 그 자체로 완전해야 한다. 그러니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흐르고 나이 먹는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의미와 재미는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50+ 세대에겐 한 해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와~ 이리 시간이 잘 가노.” 세월을 붙잡고 싶지만, 나이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 그런데 나이가 많을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게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한다. ‘마음 시간’에 물리학 관점에서 본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 시간 변화는 습득한 이미지 변화로 느껴지는데, 중년의 뇌는 신호전달 경로가 길어지고, 속도도 느려져, 같은 시간 받는 이미지 수가 적어진다. 마음 시간은 이 이미지가 바뀔 때 시간이 흘러간다고 느끼는 것인데, 자신이 인식한 이미지가 적으면 그만큼 시간을 빨리 간다는 것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나이 먹으면 시간이 왜 빨리 갈까”를 치면 나오는 설명이다. 해외 과학 저널에 실린 글을 국내 언론이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뇌가 적은 양의 정보를 느리게 처리하니까, 달리 말하면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계를 보면 이미 시간이 흘러갔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은퇴한 모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는 긴데, 일주일은 빨리 지나가고 한 달은 더 빨리 지나가더라.” 이미지를 많게 하려면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론도 그 글에 있었다. 호기심이 많으면 도파민도 더 많이 분비된다고 한다. 즐거움과 젊음의 화학물질 도파민, 잊지 말자.

 

얼마 전, 나이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미국 대선은 노익장들의 검투사 대결이었다.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 조 바이든은 78세다. 그는 통합을 외쳤다. 분열된 미국 시민들이 하나라는 것을 미국 역사에서 다시 쓰자고 했다. 같이 연령대이지만 한 사람은 아집과 교만과 어거지로 뭉쳐 있었다. 둘의 차이는 연륜 아니겠는가. 나이 듦은 이처럼 관용과 여유이다. 이제 급히 가야할 길이 있는가, 내 것만을 주장해야하는 소유물이 있는가, 자신을 돌아보자.

 

이 시대의 지성인 이어령 교수는 날개에 따른 또 다른 말을 만들었다. ‘품개’이다. 날개는 날아가는 기능을 가진 근육이라면 ‘품개’는 같은 근육이지만 날아오르려는 기능보다는 품어주는 기능을 한다. 마치 어미가 알을 품듯이 말이다. 날개가 청춘이라면 ‘품개’는 연륜이다. 경륜이다. 지혜다. 50+는 어깨 근육을 날개보다 품개로 더 많이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이 먹는 게 즐겁고 행복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러워하고 아쉬워할 일도 아니다. 지난 일은 리셋(reset)하자. 다시 시작하면 된다. 새로운 날이 온다. 2021년. 가수 김연자는 노래했다. 아모르 파티에서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다.

잘 가라, 2020. 와라, 2021. 너를 내 학익진(鶴翼陣)으로 맞이하리.

 

50+시민기자단 이형걸 기자(neogirlr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