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에 걸린 지후 이야기,

영화 까치발GV에서 만난 괜찮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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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병에 걸린 게 아니고, 마술에 걸린 거야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는 화요일 오후, 서울시50플러스재단 남부캠퍼스(이하 남부캠퍼스)에서 진행하는 화요시네마 GV(Guest Visit :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나 출연 배우를 초청해서 관객과 함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남부캠퍼스를 찾았다.

 

화요시네마는 남부캠퍼스에서 서울영상위원회와 함께 50+세대에게 평소 접하기 힘든 다양한 독립영화를 소개하여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제공하고, 상영 기회가 부족한 독립영화 상영 지원을 통해 영화문화 다양성을 보존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매달 격주 화요일에 진행하는 특별한 문화행사다GV는 오후 420분부터였지만,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에 미리 도착해서 영화부터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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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까치발포스터

 

감독 권우정

출연 권우정, 정지후

장르 다큐멘터리

개봉 21.06.03

 

영화 줄거리

까치발로 걸음마를 시작한 딸 지후

엄마 우정은 의사에게 충격적인 선언을 듣는다!

아이가 뇌성마비일 수 있어요

크면서 자연스레 없어질 수 있다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걸었지만

6살이 된 지금까지도 지후는 까치발로 걷는데

 

928일 화요시네마 상영작은 「까치발이란 제목의 영화였다. 뇌성마비 징후를 가진 딸과 엄마 권우정(감독)의 성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딸의 까치발이 뇌성마비의 징후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감독의 불안과 고뇌를 솔직하게 담아내며 엄마와 딸이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가족, 그중에서도 사랑하는 자녀에게 장애가 생겼을 때, 가족 모두가 겪는 고통은 엄청나다. 장애가 생긴 자녀의 인생은 물론 그 상황을 감내 또는 극복해야 하는 부모 또한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의 시간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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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까치발을 연출한 권우정 감독

 

영화의 시작은 두려움에 초점을 두고 갈등을 보여준다. 부부간의 갈등, 모녀간의 갈등, 타자의 시선과의 갈등이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무엇보다 큰 갈등은 감독이자 어머니인 권우정 감독 내면의 갈등이다. 그 갈등은 완벽한 엄마가 되지 못함에 대한 두려움, 본인과 딸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됨을 영화는 다양한 상황에 비춰 보여준다.

 

다시 완벽함을 회복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영화의 중후반 무렵, 한 뇌성마비 장애인과의 인터뷰에서 엄마는 깨닫는다. 완벽과 회복을 강요하는 엄마와는 달리 장애를 겪는 딸이 바라는 것은 괜찮아라는 한 마디의 위로라는 것을. 신뢰와 사랑이라는 것을. 그렇게 영화는 엄마와 딸이 세상 속에서 함께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리며 끝을 맺는다.

 

영화 상영 후 바로 이어서 권우정 감독과 함께하는 감독과의 대화(GV)가 이어졌다. 조금 전 스크린에서 격정을 쏟던 어머니를, 그 장면들을 연출한 감독으로 대면하는 일은 조금 낯설었다. GV 진행자의 감독에 대한 필모그라피 소개를 듣고서야 스크린과 무대의 거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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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영 후 이어진 GV에서 인사하는 권우정 감독

 

기존에 발표된 땅의 여자연출자로 이미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은 바 있는 권우정 감독은 소탈한 성격을 지닌 한 사람의 여성이자 엄마의 모습이었다.

 

연대와 공동체의 가치를 필름에 담고자 한다는 권감독은 이번 작품 또한 출발은 그 선상에 있었다고 말했다. 장애인 또한 연대와 공동체의 가치로 동행해야 할 사람들이기에 그 이야기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장애아를 키우고 있는 본인의 가족 이야기야말로 어쩌면 리얼리티를 극대화할 수 있는 필연적 소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물론 그를 위해서는 가족 모두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걸 감수해야 했으며, 완성된 영화 속의 상황들만큼 심하게 될 줄은 자신도 몰랐다며 웃는 권감독의 모습에서 전문가의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에게 닥친 육아와 장애에 대한 시선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는 권우정 감독은 첫 엄마 되기의 낯섦, 내 아이가 다른 아이와 다를 수 있다는 자각, 그리고 일에 대한 욕심에서 생긴 조급함이 불러일으킨 불화, 지나치게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타인의 시선 같은 것들에 대해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었으며 그를 통해 가족 모두 그리고 자신 자신의 회복의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는 소회 또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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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질문에 답하는 권우정 감독

 

장애는 불안을 낳는다. 영화 까치발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불안의 뿌리는 가족 그리고 가족사에 닿아 있기도 하다. 사랑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부모의 기대라는 폭력, 엄마의 의무라는 폭력, 남들의 시선이라는 폭력에 의해 불안은 더해진다. 이 불안을 이기는 방법은 괜찮아라는 한 마디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므로 너는 괜찮아.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라는 서로에게 건네는 격려가 불안을 이기는, 사랑을 키우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어느 관객의 질문에 답한 권우정 감독의 말이 영화 까치발의 따뜻한 목소리로 들렸다.

 

기자도 장애를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앓은 소아마비의 후유증으로 남들과 다른 세월을 살아왔다. 영화를 보고, 권우정 감독과의 GV를 보고 작년에 세상을 떠난 내 어머니를 생각했다. 내 어머니는 평생 한 번도 내 장애를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아프면 안타까워했을 뿐, 내 장애를 한탄하지 않았다. 그 덕에 평생 다리를 절며 살았지만 스스로 장애인이라 속상해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영화를 보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무심은 또 다른 괜찮아였음을. 오래 속으로 삼킨 울음의 위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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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지후와 엄마 권우정 감독

 

영화의 시작과 끝은 프랑스 동화 루시와 마녀가 메타포로 사용된다. 딸 지후가 거의 외우다시피 좋아한다는 동화책이다. 그 책을 펼치며 지후가 말한다.

 

난 병에 걸린 게 아니고, 마술에 걸린 거야

 

지후는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고, 자신이 영화에 출연했으므로 출연료 10만 원을 엄마에게 청구했고 권감독은 지급했다고 한다. 출연료를 받았으므로 지후는 장애인이 아니라 배우다.

 

 

50+시민기자단 김재덕 기자 (hamoone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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