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놀’ , 준비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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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놀은 내가 나에게 주는 최고의 ‘셀프 선물’

혼자 잘 노는 게 능력인 시대... 좋아하는 분야 골라 시도해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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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동차 영업을 하는 윤경철(55)은 금요일 늦은 밤 집을 나선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에 밤잠을 설치느니 야간산행을 택했다. 혼자 간다. 목적지는 관악산. 사당에서 출발해 정상인 연주대를 경유해 서울대로 하산하는 코스로 잡았다. 관악산은 워낙 등산로가 잘 갖춰져 있어 밤길이라도 길 잃을 염려는 없다. 풀벌레 소리 친구 삼아 걷다 보면 능선 길에 올라서고, 시원한 바람이 어서 오라고 반긴다. 능선 길은 사방으로 시야가 트여 있어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을 맘껏 즐길 수 있다. 정상에서 누워 북두칠성과 눈인사하고 빈둥대다 운 좋으면 동쪽 하늘로부터 올라오는 일출을 보는 행운도 맞이할 수 있다. 선선한 새벽 공기 마시며 하산해 24시간 하는 해장국집에서 밥 달라는 배를 채우고 집으로 간다.

 

 

 관악산 연주대에서 맞이하는 일출

 

 

그는 일찌감치 ‘혼놀’의 세계에 들었다. 고객 응대가 일상인 직업인지라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술은 해답이 아니었다. 저질체력을 보살피면서 피폐해진 정신을 회복시켜야 했다. 업무 특성상 대인관계 피로도가 높고, 집에서도 가족들과 어울려야 해 오롯이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고심 끝에 찾은 게 등산이었다.

 

“여럿이 움직이면 일정 맞춰야 하고 상대방에 맞춰야 한다. 혼자 가면 일정 내 맘대로, 내 발길 닿는 대로 가니 단출하고 좋다. 물론 처음엔 남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했는데, 기우더라. 아저씨 혼자 뭘 하는 것,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면 무심했던 가족, 지인들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는 기회가 덤으로 따라온다”

 

 

#2.

서른에 결혼한 23년 차 전업주부 길미성(53)은 요새 토요일 아침마다 자유가 된다. 선크림과 챙 넓은 모자로 채비하고 직장인들이 모두 떠나 한적한(?) 도심의 여름 땡볕 속으로 걸어간다. 오늘 행선지는 종로 익선동. 이곳은 동으로 종묘, 서쪽은 인사동, 북으로는 창덕궁이 감싸고 있는데 좁은 골목길 사이로 노후 한옥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로 도심 핫플레이스다. 서울에서 가장 오랜 한옥골목이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젊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카페, 공방, 밥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이 든다. 미성씨는 공방에 들러 평소 갖고 싶었던 소품 몇 가지 사고, 맛있는 밥집에서 혼밥을 먹고, 골목 여기저기 하릴없이 쏘다니다 광화문 야경을 뒤로하고 집에 간다.

 

 

익선동은 비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한옥들이 줄지어 있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지로 안성맞춤이다. '내 손안에 서울' 기사 사진 발췌

 

 

미성씨는 막내인 둘째 딸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비로소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막내 대학 가면 일주일에 하루는 온전히 나를 위해 쓸 테니, 그리 알라”며 작년에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처음엔 다들 당황했다. 여태 할 만큼 했으니, 더 늦기 전에 나를 위한 시간을 갖겠다고 하니 남편도 애들도 다 이해해 줬다. 누구의 엄마, 부인이 아닌 길미성을 다시 찾아내 요즘 살맛 난다” 그녀는 다음 주에 서울 남산 한 바퀴 탐험에 나설 예정이다.

 

혼자 놀기를 일컫는 ‘혼놀’은 1인 가구 증가로 ‘나 홀로’ 문화가 확산하면서 생긴 신조어다. 혼놀 외에도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영(혼자 영화보기), 혼산(혼자 산에가기) 등 혼자 하는 범주도 무한 확장 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이후 자전거 관련 산업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 하나금융연구소가 올 1/4분기 하나카드 매출 자료를 분석해 내놓은 소비행태보고서를 보면 자전거 업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9% 늘었다. 자전거는 야외에서 사람과의 접촉을 피할 수 있어 자연스레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해 소비자들이 몰린 것으로 보인다.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면서 혼자 호텔에서 패키지를 즐기는 럭셔리 1인 상품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늦은 밤 한강대교 위에서 여의도 방면을 보면 나타나는 야경. 뚜벅이라야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다.

 

 

혼자 노는 문화를 요즘 젊은이들의 대세 문화쯤으로 치부하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긴다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00세 시대, 혼자 놀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고립무원을 자초하게 되고, 젊은 세대와의 소통에서도 실패할 확률이 크다. 대가족 체제에서 나고 자라 한 반에 60~70명을 헤아리던 교실에서 성장한 50플러스 세대에게 혼놀은 어색하고, 극복하기 쉽지 않은 도전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노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자신과 가족, 주변을 위해 갖춰야만 하는 시대적 요구가 됐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한 달에 한 번으로 시작해 일주일에 한 번으로 옮겨갈 수 있다면 성공적으로 혼놀의 세계로 진입한 것이다.

 

윤경철, 길미성씨처럼 이미 혼놀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장년층이 있고, 그 수는 늘고 있다.  중앙일보 조사연구팀이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40~50대 응답자 449명 중 45.8%는 ‘예전에 비해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고 답했다. 조선일보 더테이블이 20~60세 성인남녀 200명에게 ‘혼놀 혼행’설문조사를 했는데, 결과를 보면 혼자 놀기에 대한 달라진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혼자 여행 다니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물으니 46.4%가 ‘아무렇지 않다’, 34.8%가 ‘멋있어 보인다’고 응답했다. ‘혼술·혼밥 같은 나 홀로 문화’에 대해서도 75.1%가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했다. ‘연인이나 배우자가 혼자 여행을 간다면?’이란 질문에는 70.1%가 ‘허락한다’고 응답했다. 혼놀 문화는 청년세대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100세 시대 건강한 심신을 유지하며 인생 2막을 설계하기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다.

 

뭘 하고 놀아야 할지 막막하다면 걱정 마시라. 혼놀의 세계로 가려는 초보자들을 위해 인터넷에는 유능한 가이드들이 포진해 있다. 몸으로 하는 걸 좋아하면 운동이다. 등산, 자전거 타기, 마라톤은 혼놀의 정수들이다. 운동이 싫으면 뚜벅이를 선택하면 된다. ‘서울에서 나고 반평생 살았지만 여태 남산타워를 가본 적이 없네’ 라면 뚜벅이가 제격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은 보물지도와 다름없다. 찾아보면 “와 내가 사는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네”라고 놀랄 것이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관광포털(https://korean.visitseoul.net/index)에서 필요한 모든 정보를 구할 수 있다. 모바일이 편하면 앱스토어 또는 구글 플레이에서 서울관광(itourseoul) 앱을 찾아 다운받고 이용할 수 있다.  이것저것 다 성에 차지 않으면, 배낭 둘러메고 기차역으로 가서 맘에 드는 행선지로 무작정 떠나고 볼일이다.

 

 

퇴근길 들른 종로 낙산에서 보이는 서울야경. 김용덕 제공

 

 

김난도 교수와 서울대 소비 트렌드 분석센터가 발표한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는 10대 키워드로 ‘오팔세대’를 꼽았다. OPAL은 ‘Old People with Active Lives(활발한 인생을 사는 신노년층)’의 약자인 동시에, ‘58년생’의 ‘오팔’을 의미한다.  베이비붐세대의 대표적인 5060세대를 의미하는 오팔 세대는 자신들만의 콘텐츠를 구매하고, 활발한 여가 생활을 하고, 새로운 일자리에 도전한다.  신기술과 유튜브 등 인터넷을 밀레니얼세대 만큼이나 활발히 사용하며 다채롭게 자기만의 색을 드러낸다. 이제 이들에게 실버나 그레이 컬러가 어울리지 않는다.

 

익숙함에서 벗어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혼놀 경험자들이 전하는 진리는 ”불안감이든, 게으름이든 각자의 등딱지에 달라붙어 있는 핑계를 걷어차고 길을 나서면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는 것이다.  새로운 경험이 등산이든, 자전거이든, 내가 사는 동네 한 바퀴가 됐던 각자의 형편과 의지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혼놀은 일터에서, 가정에서 쉼 없이 달려오며 견뎌 낸 관계맺기의 피로감에서 벗어나는 유용한 수단이다. 내가 즐거우면 나를 둘러싼 주변이 밝아지는 법이다.

 

익선동 사진 출처:내 손안에 서울(http://mediahub.seoul.go.kr/archives/1196548?tr_code=s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