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삶에 깊이 들어가는 것, 영화 Children 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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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끝없는 선택으로 이어져 간다.

 

영화 <Children Act>

 

 

살아가면서 시시때때로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 일들로 자주 고민에 빠진다. 특히 소심하고 멘털이 약한 데다가 결정 장애가 심각한 내겐 때론 피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합리적이고 합당한 선택을 잘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경솔한 듯 고민 없이 빠른 결정을 내리는 사람 역시 부럽다. 수없이 내려지는 선택의 기로에서 사는 것은 두려움을 불러오기도 한다.

 

날마다 판단을 하고 판결을 내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그 판결의 기본적 바탕은 법률적 해석이다. 그것 참 쉽다 생각할 수 있지만, 법과 함께 인간적 판단과 개인적 상황 등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는 걸 간과할 수 없으니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군가의 삶에 깊이 들어가는 것,

그것도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선택을 해 주어야 하는 입장에 서는 것은 참 어렵다.

 

고작 18세, 성인이 채 되지 않은 파릇파릇 아름다운 청춘이 생과 사의 기로에 있다. 게다가 개인적인 종교적 신념으로 수혈을 거부하며 고집 피우는 중인데 그것을 판사가 결정을 해야 한다. 법, 참 열 일한다. 이 판결을 계기로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일이나 꿈, 그리고 사랑을 위한 판단과 선택을 되돌아본다.

 

 

영화 <Children Act> 스틸컷

 

 

엠마 톰슨이 연기한 영국의 고등법원 판사 피오나 메이, 연기자로서 그 역할에 완벽한 몰입을 보여준다. 그녀의 연기나 분위기는 그녀만이 해낼 수 있는 캐릭터 구현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완벽주의 피오나 판사와 일체화시키는 놀라운 연기력이다.

 

Children Act, 칠드런 액트는 “아동의 양육과 관련된 사항을 판결할 때 법정은 무엇보다 아동의 복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라는 영국 아동법을 말한다.

 

종교의 신념대로 죽음 앞으로 다가가는 소년에게 어떤 해석으로 판단을 내려주어야 할까. 아직은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 18살의 백혈병 환자 애덤.  그런데 부모 역시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적 신념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아들의 수혈 거부를 받아들인다. 종교적 신념은 과연 아들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인가.

 

결국 법정에서 선택해 주어야 한다. 성실한 완벽주의 피오나는 말한다. “난 어떻게든 결정해야 해”

 

 

영화 <Children Act> 예고편

 

 

그런 이면에 피오나의 복잡한 심리가 있다. 남편 잭과는 결혼생활의 위기를 맞는다.  사랑하는 가정의 부부로 지내고 싶지만 이미 각자의 생활에 몰두한 채 지내는 부부다. 우아하고 완벽한 판사로서 바람피우고 싶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삶의 딜레마에 과연 정답은 있는 건지. 이들은 또 어떤 결정에 이르게 될지.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을 하기 위해 후견인과 함께 애덤을 직접 찾아가는 이례적인 선택을 하는 판사 피오나.  그러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소년은 말한다. “제 선택이에요. 판사님” 당사자의 확고한 의지를 판사가 바꾸라고 말할 수는 없다.  본인의 선택이기에 안타까워할 수밖에.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판사의 입장에서 피오나는 존중과 배려를 보여준다.  이럴 때 관객의 입장에서 ‘내가 ‘피오나’였다면 과연 ‘애덤’을 만나러 갔을까? 생각을 바꾸라고 간청하지 않았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한다.

 

하지만 피오나는 병색이 짙어가는 애덤을 찾아가 말한다. "다가올 삶과 사랑, 그리고 시를 떠올려 봐"라고 희망을 전한다.  결국 피오나로 인해 달라진 세상 속에서 애덤은 여전히 피오나의 도움을 원한다. 이제 달라진 세상에서까지 자신을 이끌어주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네 사건은 끝났다."며 또 다른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냉철한 판단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피오나도 흔들린다.  그러나 더 이상의 답은 없고 여운이 있을 뿐이다. 내 삶의 답은 내가 내려야 하듯이.

 

 

영화 <Children Act> 스틸컷

 

 

법을 집행하는 가정법원 판사 피오나와 순수한 소년 애덤이 마주하는 장면들, 애덤의 기타 연주에 맞춰 부르는 피오나의 노래. 예이츠의 시와 서정적인 노래 '버드나무 정원 아래서', 그리고 기타 연주와 몽상가 소년과의 복잡한 심리가 적당히 무게감 있다. 또한 별다른 미사여구나 꾸밈없이 만들어진 영화가 단정하고 담백해서 좋다.

 

법률과 현실적 부부 사이와 나이 든 여성의 혼란스러움, 그런 중에도 마음을 다독이는 음악은 영화를 더 풍성하게 해 준다.  피오나가 업무에 집중할 때 집안에 느릿하고 무게 있게 흐르던 바흐의 선율이 그녀의 동선을 따라다니며 그 감정을 대변한다.  그리고 소년 애덤과 함께 할 때의 배경음악으로 아일랜드 민요 Down By The Salley Gardens는 이미 친근해서 반갑다. 자동차에서 임형주의 CD로 이 노래를 듣곤 했었다.

 

 

"둑 위에 풀 자라 듯 쉽게 살라고 그녀는 나에게 말했지만 나는 젊고 어리석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눈물에 젖어 있습니다."

- 예이츠의 시

 

 

예이츠의 시에 곡조가 붙은 ‘Down By The Salley Gardens’를 직접 연주하며 노래하는 엠마 톰슨의 덜 다듬어진 목소리는 어쩐지 이게 제맛인 것 같은 느낌에 더 실감 난다.  그래, 지나고 보니 난 늘 지금보다 젊고 숱한 실수투성이였다. 때로 행복했지만 날마다 아쉽고 어리석었다.  그런 자신을 위로하며 가슴을 쳤었다. 어리석었기에 기억에 남는 것이 어디 한두 가지뿐일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