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구로 올레길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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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형, 하천형, 도심형이 어울리는 명품 힐링길

삶이란 사람의 줄임말, 탈 없이 먼 길 가려면 서둘면 안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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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이 지면을 빌려 ‘코로나 집콕’에는 영화 보기로 울적함을 달래자고 했다. 그리고 말미에 영화를 봤으니 밖으로 나가 산책하자고 했는데, 이번에는 내친김에 좀 더 먼 길을 나서보자고 말하고 싶다. ‘구로 올레길’을 가보자.

 

 ‘구로 올레길’은 구로구에서 만든 길이다. 구로구청에 따르면 2011년 11월에 시작하여 2014년 5월에 조성 사업을 끝마쳤다고 한다. 산림형 10.5Km, 하천형 10.5Km, 도심형 7.5Km를 만들었다. 산림형, 도심형, 하천형을 섞어서 단번에 다니면. 구로구의 외형을 바로 섭렵해 볼 수 있는 길이다.

 

 나는 어릴 적 구로구에 살면서 대학교까지 다녔다. 그리고 직장을 얻어 주로 지방을 전전하며 반평생을 보냈다. 퇴직하고 다시 구로구에 터를 잡았는데, 달라진 새로운 모습을 올레길을 다니면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어쩌면 구로구민으로 구로 올레길은 반드시 가봐야 할 신고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산림형 코스를 중심으로 답사 코스를 짰다. 하천형 코스를 시작으로 신도림역에서 고척스카이돔까지 이어지는 안양천을, 도심형은 스카이돔에서 계남근린공원 앞까지 중앙로를, 그리고 산림형은 4코스 전부를 거친 다음 다시 목감천을 따라 신도림역까지 내달릴 계획을 세웠다.

 

 안양천 올레길은 가벼웠다. 고척스카이돔은 장대했다. 회색 우주선이 내려앉은 모습이다. 도심형으로 접어드는 중앙로 올레길 길목에 구로소방서가 있다. 소방관들의 헌신에 경의를 표했다. 계남근린공원까지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도중에 높은 건물의 교회 앞을 지나는데 위압적이라 쳐다보기 힘들었다.

 

왼쪽부터 고척 스카이돔, 매봉상 정상, 산림형4코스 입구

 

 이날의 날씨는 매우 쾌청했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었다. 계획은 창대(?) 하였으나 자신을 과대평가한 결과는 참담하고 미천하기 그지없었다. 산림형 3코스를 마치자, 체력이 방전됐다. 3코스 끝 천왕역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가 있길래 주저 없이 귀가하고 말았다. 천왕역 인근에는 서울시50플러스 남부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는데, 괜스레 미안했다(나는 서울시50플러스 남부캠퍼스 소속 시민기자다). 그동안 운동을 야무지게 하지 못한 탓이 크다. 스마트폰 걷기 앱을 보니 14.06Km를 4시간 50분 동안 걸었으며, 342Kcal를 사용했다고 나온다.

 

 

 집에서 지도를 펼치고 오던 길을 다시 살펴보니 구로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구로구는 북쪽으로 서울 양천구와 붙어있고, 서쪽으로는 부천시와 어깨를 같이 하며, 남쪽으로는 광명시에, 동쪽으로는 영등포구와 접해있다. 서울시 서남부에 자리 잡고 있다. 삼림형 코스는 고척동 계남근린공원에서 시작하여 매봉산(110m), 와룡산(98m), 천왕산(144m), 개웅산(126m)을 잇는 길이다.

하지만 길은 길로 이어지지 않았다. 산과 산 사이로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큰길을 냈다. 사람들은 많은 짐을 싣고 더 빨리 다닐 수 있도록 포장이 잘 된 길을 냈는데, 산업을 증진하는 길이었다. 신정동을 지나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이고, 부천을 통해서 인천항으로 가는 길이다. 2코스 매봉산 올레길을 찾아가기 위해선 오류중학교를 지나서 남부순환로에서 육교로 건너야 한다. 3코스 천왕산 올레길을 향하려면 온수역을 지나서 경인로를 또 육교로 건너야 한다. 올레길은 포장길에게 선행(先行)을 양보하고, 포장길은 올레길에게 물산(物産)을 제공한다. 3코스에는 오류동에서 항동으로, 광명으로도 가는 새 길이 있는데 그 길은 천왕산을 가르지 않고 터널로 만들어 아래로는 자동차가, 위로는 사람과 꽃과 곤충들이 막힘없이 넘나들 수 있도록 배려했다.

 

 매봉산 정상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여의도 63빌딩은 물론이요, 멀리 잠실 롯데월드 100층 빌딩도 보였다. 청명한 날씨에 감사함을 느꼈다. 적어도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이렇게 맑은 하늘을 보아야 한다. 이것이 코로나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역설이다. 성공회대학교 뒷산에서 시작하여 천왕산 하늘숲초등학교 앞에서 끝나는 3코스는 곳곳에 ‘쇠귀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이 팻말에 새겨져 있어 내닫는 길을 붙잡는다. 선생님은 '삶'이란 사람이 합쳐진 말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삶을 사람으로 읽어도 좋다고 하셨다. 우리가 일생 동안 경영하는 일의 70%가 사람과의 만남이며, 좋은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공부는 망치로 합니다”, 갇혀있는 생각의 틀을 깨트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망치 같은 잠언이 끝나면 항동 철길이 나타난다.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다. 아이와 손을 붙잡고 연인과 팔짱을 끼고 걷기 좋은 철길이다. 철길 옆으로 음식 팔고 물건 파는 가게가 없어 더없이 한가롭다. 대신 푸른 수목원이 반겨준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다채롭다. 수목원으로 빠지면 올레길로 돌아오기 어려우니, 별건으로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왼쪽부터 신영복 선생님의 '삶', 최춘해 시인의 '강물이 흐르며'

 

 산림형 2코스에 있는 매봉산과 와룡산은 학문과 예술을 숭상하는 ‘명당’자리가 아닐까 싶다. 학교 이름들이 예사롭지 않아 그렇다. 예림디자인고등학교,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서서울생활과학고등학교, 세종과학고등학교, 우신고등학교가 그 품 안에 있다. 우신고등학교와는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당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는 연합고사를 치르고 고등학교는 추첨으로 배정받았다. 흔히 말하는 뺑뺑이다. 그런데 우신고등학교만 추첨제가 아니고 사전 시험제로 우수자를 먼저 뽑을 수 있는 학교였다. 무엇보다도 전교생에게 모두 장학금을 준다고 했다. 이 학교의 재단은 주조회사였다. 나와의 인연은 이 학교에 도전했지만 낙방했다는 것이다. 인연이 있는 게 아니라 인연이 없던 것이다.

 

 구청 관계자에게 다음 이야기는 조금 서운하겠지만, 명품 올레길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들어 주기 바란다. 오류중학교에서 2코스로 가는 육교를 찾는데 표지판이 없어서 무척 애먹었다. 글마루 어린이도서관을 지나 금강산 마트 사거리에서 이 길 저 길 헤맸다. 3코스 역시 오정초등학교까지는 표지판이 잘 안내되어 있었으나, 목화수목원 아파트 앞에서 표지판이 사라져 3코스 입구를 찾는데, 한참 걸렸다. 구로 올레길은 군데군데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코로나 블루’를 격파할 수 있는 매우 효능있는 길이다. 코로나 백신이 나오기까지 마음의 백신을 맞아보자. 안양천 올레길에 있는 최춘해 시인의 ‘강물이 흐르며’를 암송하며 중도 회군으로 지친 심신을 다스린다. “먼저 가려고 다투지도 않고, 쳐져 온다고 화도 안 낸다. 앞서간다고 뽐내지도 않고, 뒤에 간다고 애탈 것도 없다. 탈 없이 먼 길을 가자면, 서둘면 안 되는 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