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커피를 좋아하셨던  아버지. 

종류 가리지않고 병상에서조차 커피만큼은 빨대로라도 드셨던...

그러나 콧줄을 꼽고나서는 손을 저어 거부하셨던 내겐 잊을수 없는 각종

커피들.

 

아직도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약을 먹고있는 난  교통수단이용에

한계가 있어서 남양주까지가  북극보다 멀게 느껴졌다.

십여년전 아버지생신때 가본 봉쥬르라는 카페에 가보기 위해

친정식구들과 나섰는데 자동차 속도가 오르자 여지없이 어지럽기시작했으니.

 

엄마가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모두의 소중한시간에 먹칠을 하고싶진

않았다. 너무나 변한 카페모습에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지만

여전히 그자리에 그카페가 있다는게 고맙기만했다.

 

아무도 아버지얘긴 꺼내지 않았지만 표정만봐도 알수 있는 식구니까

무슨말을 입에 머금고 있는지 서로 다 알수 있었다.

 

일주일후 우리는 또다시 모여서 참치회를 먹었는데 오롯이 우리 핏줄끼리만

모여서 이렇게 먹는게 얼마만이냐며  왜 이제서야 이렇게 모였을까

라는 얘길 언니가 했다.

 

아버지의 투병기간이 길어지면서 자매간에 서로 조그마한 앙금이 쌓이고 

그런 감정은 놔두기만해도 눈덩이처럼 커져서 한동안은

얼굴보기를 꺼려했었으니까.

 

홀로살고계신 엄마집에서 각자 만들어온 음식을 먹고 헤어지는게

다였는데 후원금 덕분에 맛난음식들 사먹고 너무나 좋은시간을 보낸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