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산을 즐기는 방법은 많다.

너럭바위에 누워 시를 낭송하고 바람에 실려 오는 기타 선율 따라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지친 마음에 그려지는 작은 여유가 일상의 활력이 된다."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의 2018년 <불광50+문화조성프로젝트> 중 하나인 '문화로 쉼표 찍기'에서 내건 슬로건이다.

가볍게 걷고 문화를 즐기며 쉬어가자는 뜻을 담았다. 

 

<불광50+문화조성프로젝트>는 모두 네 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은평구에 위치한 서부캠퍼스 주변 불광역 일대를 50+신노년 문화의 메카로 조성하여

지역 경쟁력을 강화하고 50+문화의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것으로, 먼저 문화기획단 별별창고팀이 진행하는 '문화로 쉼표 찍기'와 서부캠퍼스 인생학교 졸업생들이

주축이 된 루덴스협동조합의 '놀이하는 저녁', (사)숲을 찾는 사람들의 '은평 하루여행'과 박선화 작가의 '나를 만나러 갑니다'까지. 

 

 

 

불광역 주변은 북한산을 가기 위한 등산객들로 평일에도 사람이 많다. 요즘 같은 단풍철이면 멀리 지방에서도 등산객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다.

각종 먹거리와 아웃도어 매장들이 있지만 대부분 낙후된 시설로 문화와는 관련성이 적다. 하지만 불광역 주변을 이용하는 등산객은 물론 이곳을 생활권으로 하고 있는

50+세대의 인구 비율은 서울 지역 내에서도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그저 '등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이곳 50플러스 서부캠퍼스를 기반으로 50+세대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지속적인 문화 활동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 바로

<불광50+문화조성프로젝트>의 추진배경이다.

 

'문화로 쉼표 찍기'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서울시50플러스 캠퍼스의 입문 프로그램인 50+인생학교를 졸업한 서부캠퍼스와

중부캠퍼스 동문들로 구성된 '문화기획단 별별창고'팀이다. '문화기획단 별별창고'는 50+인생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에서 진행한 '50+프로젝트 기획자 양성과정'에서 만난 이들이 결성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 50+세대의 문화를 만들고 확산시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는 중이다.

 

10월 1일부터 4주 동안 진행한 '문화로 쉼표 찍기'는 매 회 가벼운 자기소개와 함께 짝꿍을 정해 북한산 입구까지 걸으면서

자연스레 대화를 나눈다. 돌아가면서 무조건 3분씩 말하기와 같은 규칙도 있다. 말을 안하면 기다려 준다.

두 사람씩 짝을 정해 걷는 동안 마음이 열리는 효과가 있다.

목적지인 북한산 각황사로 오르는 길목에 너른 공터가 있다. 첫째 날 각황사를 둘러보고 너른 공터에 둘러앉아 어른을 위한 동화를 들려주었다. 머리카락이 몇 가닥 안 남은 사람이 그 몇 가닥을 소중히 하며 매일 이리저리 다듬다가 마지막 한 가닥마저 뽑히고도 "음, 이것도 괜찮은데."하며 만족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둘째 날엔 풋풋했던 청춘을 떠올리며 7080 노래를 들려주었다. 악보를 손에 들고 통기타 연주에 맞춰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간도 있었다. 즉석에서 신청곡을 받아 기억을 더듬으며 '메기의 추억'을 부를 때는 너 나 없이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목청을 높였다.

 

 

 

셋째 날은 컬러인쇄로 예쁘게 뽑아온 시들을 펼쳐놓고 각자 좋아하는 시를 고르게 한 뒤 직접 낭송하는 시간이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좋아해서 오늘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한 수강생은 평소 좋아한다는 시인 백석이 김영환을 위해 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멋진 목소리로 읽어 박수를 받았다. 여담으로 백석이 사랑했던 여인 김영환은 죽기 전에 기부한 길상사의 가치 1,000억이 아깝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했다는 말이 있다.

 

      

 

 

어느덧 마지막 4번째 시간.  불광동의 서울미래유산을 찾아가 보는 시간이었다.

'서울미래유산'이란 근대나 현대 서울을 배경으로 많은 시민이 참여하거나 기억하고 있는 사건, 사람이나 이야기가 있는 유·무형의 것으로 서울특별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가 미래세대에게 남길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은평구에는 여섯 개의 서울미래유산이 지정되어있다. 이 중에 서부캠퍼스에서 도보로 가능한 청기와양복점, 불광동성당, 불광대장간까지가 오늘의 코스. 

 

처음으로 들른 청기와 양복점은 혁신파크 맞은편 버스가 다니는 도로 옆 길가에 있었다. 무심코 지나치던 곳들이 미래유산의 가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모두 신기해하는 모습이었다. 다음 불광동 성당은 1986년에 지은 것으로 한국근현대 건축 문화를 대표하는 건물이다. 건축가 김수근의 마지막 작품이며 한국 100대 건축물로 지정이 되어있다. 성당 입구를 지나 뒤 켠 계단을 오르니 꽃이 심어진 작은 공간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날리자 모두 탄성을 지르며 오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곳에서 잠시 눈을 감고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들른 대조동의 불광대장간은 1963년도부터 현재까지 2대에 걸쳐 가업을 잇는 곳이다. 예전처럼 수작업으로 농기구와 목공기구 등을 만드는 곳인데, 마침 수작업으로 연탄집게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잡다하게 걸려있는 물건들이 신기해서 이리저리 만지기도 하고 선물용으로 작은 과도를 사기도 했다. 

 

   

 

"오늘이 마지막 시간입니다."

 

모두 마치고 마무리 인사를 하자 한 수강생이 다가와서 "다리가 아파서 산길을 걷는 것이 힘들었는데, 이렇게 적당히 걸으면서 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너무 좋다."며 또 하는지 물었다. 강사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다. 사실 나는 문화기획단 별별창고의 일원으로 첫 회부터 마지막까지 강사로서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했다.

(물론 시민기자로써의 취재도 함께^^) 

 

간혹 트레킹을 기대하고 온 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적당한 걷기와 수다로 마음을 여는 이 시간을 즐거워했다. 땀 흘리며 산을 오르는 것은 좋다.

하지만 바람 일렁이는 낮은 자락길에서 서로의 눈을 맞추며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은 더욱 좋다.

이번에 서부캠퍼스를 통해 진행하는 개성 있는 프로젝트들이 불광을 생활권으로 하는 분들의 쉼표가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