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요즘 50대 관심사는 뭐라고 생각해요?”

며칠 전 한강을 걷고 돌아오는 길에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도시해설 프로보노 활동으로 ‘소소한 걷기(한강 따라 걷기)’를 하면서 만난 친구입니다. 우리는 첫날 잠시 나란히 걷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손에 쥔 야광봉이 눈에 들어왔는지 그녀는 ‘도시해설가’ 활동에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그냥 걷기만 해도 좋은데 해설을 해주니 휴식도 되고 참 좋다.”고 말한 그녀는 지난주 아들까지 동반했습니다. 좋다고 했더니 아들이 따라나섰다고 해요.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볼 만큼 자란 20대 초반의 아들과 50대 중반의 엄마가 친구처럼 도란도란 함께 걷는 모습은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더구나 그날은 비가 내려서 분위기도 매우 운치 있었어요.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그녀는 방향이 같아 함께 탄 전철에서 요즘 50플러스의 관심사는 뭐냐고 불쑥 물었습니다. 자신도 50대면서 마치 남의 일처럼 덤덤히 말입니다. 잠시 생각하다 되물었습니다.

 

“그러는 동생은 관심사가 뭔데?”

“없어요.”

 

망설임 없이 그녀는 관심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그러니까 관심사를 모르겠어요”라고 덧붙였습니다. 진짜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는 거지?” 그녀는 되묻는 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갱년기를 떠올린 내 생각을 읽었는지 갱년기는 지났다면서요.

 

갑자기 생각이 많아집니다. 정리되지 못한 생각이 엉키어 뱅뱅 돕니다. ‘내 관심사는 뭐였더라?’ 조금 전까지 있었던 거 같은데 확신이 안 섭니다. 그녀의 “없어요”가 무슨 뜻인지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확실히 참 애매한 나이가 50플러스라고 습관적으로 끄덕입니다.

 

샌드위치 혹은 낀 세대라고도 표현하는 50플러스 세대. 노년의 부모를 보살펴야 하고 자녀도 신경 써야 하지만 내 노후는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세대. 여전히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론 너무 얽매이지 않는 활동을 원하는 세대. 나이만큼 쌓인 경험치는 많지만 다양한 경험치는 아닌 한정적 경험치를 가진 세대. ‘내가 왕년에’하면서 가끔 잘나가던 시절을 회상하다가도 어깨가 처지는. 뭔가 하긴 해야겠는데 그 뭔가를 찾기가 쉽지 않은 참 어려운 세대 50플러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그녀가 다시 말문을 열었습니다.

 

“언니는 활동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보여?”

“네. 그리 보여요.”

“아.......... 그렇구나.”

 

듣고 보니 맞는 말입니다. 두드러진 건 없어도 요즘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껑충 뛰진 못해도 한 걸음씩 내딛고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엉켜있던 매듭이 빠르게 풀립니다. 갑자기 해줄 말이 많아집니다.

 

“언제 시간 나면 50플러스캠퍼스에 나와. 불광동에도 있고 공덕동에도 있어. 나도 처음엔 그랬어. 이곳에 드나들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 거야. 당장 뭘 할지 몰라도 그냥 오면 상담도 가능하고 다니다 보면 내가 뭘 할지 생각도 나고 뭔가 하게 되더라. 그래서 지금 내 모습이 된 거야.”

     

봇물이 터지듯 시키지도 않은 말이 술술 나왔습니다.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 온 지 이제 막 4개월 되었다는 그녀는 몸까지 비스듬히 틀어 듣고 있었습니다. 내친김에 50플러스캠퍼스 입문 과정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들려주었습니다. 잠실역에서 홍대까지 멀지 않은 거리라 다행입니다. 시간이 단숨에 지났습니다.

 

그녀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생각합니다. 50플러스캠퍼스가 없었으면 지금의 내 모습이 가능했을까. 자신이 없습니다. 그녀처럼 나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주부경력 30년을 누가 돌아봐 주었겠습니까. 그녀와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내게는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는 차이겠지요. 누가 뭐래도 서울시50플러스를 만난 것은 내 인생의 큰 행운입니다.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서울 토박이로 받은 유일한 선물입니다. 새삼 감사함이 온몸을 휘감습니다.

 

50플러스캠퍼스를 드나드니 다양한 경험이 쌓입니다. 아는 사람이 점점 많아집니다. 대부분 50플러스 세대입니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깔깔대다가 다른 이를 만나면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깨닫기도 합니다. 비슷하면 편해서 좋고 다르면 성장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서로 의견이 달라도 ‘그럴 수 있지’ 끄덕여줄 수 있는 것도 50플러스가 되어 생긴 여유입니다. 언젠가 내가 가진 소소한 경험들이 주변에 선한 영향을 끼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과제라도 풀 듯 그들의 관심사는 뭘까 추측해 봅니다. 캠퍼스에서 수업을 듣다가 마음이 맞아 가까이 지내는 한 친구는 20대 후반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퇴직 후 갖는 지금의 여유가 너무 좋다고 합니다. 또 어떤 완벽한 이는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미래에 올 경제적인 불안에 소소한 일자리를 원합니다. 노년에 그저 맘 편히 세끼 밥이나 먹고 건강만 하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뭔가 소박하면서도 50대의 바람이 함축된 말입니다. 마음에 담깁니다.

 

‘맘 편히 세끼 밥이나 먹고 건강만 하면’

맘이 편하다는 것은 주변이 편하다는 것이고 세끼 밥을 먹는다는 것은 경제적인 궁핍은 없음인데 여기에 건강이 더해지면 금상첨화(錦上添花)겠지요. 사실 건강만 하면 뭐든 할 생각이 나지 않겠습니까. 50플러스를 지나 노년까지 이렇게 보낼 수 있다면 최고의 행복입니다.

 

아들과 우산 속 데이트를 할 줄 아는 좋은 엄마. 50대의 관심사가 궁금하다는 그녀는 떠오르지 않는 자신의 관심사가 궁금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비슷한 세대가 느끼는 관심사에서 자신의 것을 찾아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도 나와 같은지 다른 이를 통한 확신이 필요했는지도 모르죠. 몰입할 수 있는 관심사가 있으면 좋지만 당장 없다 한들 어떻습니까. 자꾸 마음이 멈추면 그게 바로 잊고 있던 자신의 관심사일 수도 있습니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최근 내 관심사는 삶, 혹은 사람입니다. 당신의 요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어떤 생각이 마음을 뜨겁게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