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2019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문체부정책기자단 활동 중에는 다양한 정책 이슈를 담은 현장취재를 포함한 특별한 장소와 목적의 행사에 참여하는 팸투어(fam tour)가 있다. 올해로 정책기자단 활동이 개시된 지 12년이 흘렀다. 나의 경우 정책기자단 12기 신임기자이지만 개중에는 10년 가까이 활동을 이어오는 베테랑 연임기자도 다수 있다. JSA 팸투어(Fam tour)에 참여하는 것이 처음이라 여러모로 분위기 파악도 안된듯하여 부담도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신청해보았더니 선정되었다. 평소에 가보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거니와 2018년 4월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어진 9.19 군사합의로 판문점은 평화모드라는 기대감에 현장을 직접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싶었다.

 

단체사진 - 안보 견학에 참여한 정책기자단, 국방부관계자들

 

9월 17일 오전 9시 반 삼각지 국방부 컨벤션센터 앞에 집합한 13명의 JSA 팸투어단은 평소와는 달리 다소 흥분되어 상기된 모습이었다. 한반도 분단이라는 70년의 비극적 역사를 종식시키고 항구적 평화를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 여러 신호가 있었다.(평창동계 올림픽, 판문점 선언, 남북군사회담 등) 이번 견학은 특히 9.19 군사합의서 1주년을 기념하여 이의 체결 경과 및 이행 현황에 거는 기대가 큰 만큼 참신한 취재에 대한 각오와 열의가 남달랐을 것이다. 군사 합의 주요내용은 ▶상호 적대행위 전면 중지 ▶DMZ(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서해 북방한계서(NLL)일대 평화 수역화 ▶남북교류협력 군사적 보장 ▶상호 군사적 신뢰구축 등으로 요약된다.

 

우리가 일반인으로서 군사적 합의 세부 내용을 전부 꿰뚫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국민적 관심이 말해주듯이 남북 양측 간에 군사적 긴장완화와 전쟁위협에 대한 해소를 위한 획기적인 이행이라는 점을 국민의 한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다짐으로 견학에 임했다.

 

평소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JSA 가는 길은 생각보다 가까웠고 짧았다. 혼잡시간대를 벗어난 탓에 삼각지 국방부 컨벤션센터에서 출발 10여 분만에 강변북로에 진입하였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띄엄띄엄 자유IC, 임진각 IC, 성동 IC가 스쳐가고 낯선 이름의 당동 IC에 이르니 판문점과 파주 갈림길 표시가 눈에 들어 왔다. 불현듯 이 장소가 지금까지 왜 이리 오기 어려웠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판문점 방문의 의미에 대한 굳은 다짐 한편으로 나의 머릿속엔 어릴 적 할아버지와의 짧은 나들이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 50여 년 전 할아버지 손잡고 대절버스를 타고 재경 군민회/읍민회 행사로 임진각을 다녀온 기억이다. 계절적으로 보아 설날의 합동망향제는 아니었던 것 같고 추석 무렵이었는데 2층 정도의 회색빛 시멘트 건물 밖 전망대에서 할아버지는 나의 손을 꼭 잡고 서 있었다. 그곳에서 남쪽 민통선 방향을 한없이 바라보시던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추더니 ‘저기로 계속가면 돌아오지 않는 다리(=돌아올 수 없는 다리)가 있다’ 며 옅은 긴 탄식을 품어 내셨다. 그러나 이 짧은 조각난 나의 어릴 적 기억은 너무 오래 전의 빛바랜 추억의 한

단면으로 남아있다. 오늘 견학하는 JSA는 그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찾던 임진각도 아니건만

나는 왜 이리 감상적인 상념에 빠져 있는 것일까? 예전에는 일반인의 신분으로 감히 JSA를 방문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일반인이 맘 놓고 갈 수 있는 곳이 임진각까지였다. 나의 상념은 아마도 이 두 곳은 실향과 분단의 아픔을 생각하지 않고는 찾을 수 없는 곳이라는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50여년이 지난 오늘 JSA 견학은 어릴 적 할아버지 손잡고 임진각을 찾은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 할아버지와의 추억과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실향민 1세대인 할아버지, 그리고 2세대인 아버지도 통일의 날을 학수고대하셨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셨다. 이분들이 이 세상을 하직한지도 어언 강산이 몇 번 바뀔만한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꿈에 그리던 고향을 맘껏 왕래하시며 친구들과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누리시리라 믿고 싶다.

 

여느 농촌 풍경을 고스란히 담은 초가을의 드넓은 평야엔 드문드문 이제 막 가을빛을 내는 논밭이 즐비한 광경이 펼쳐졌다. 속도를 내며 달리던 차량이 느닷없이 서행을 한다. 전방을 살펴보니 검문소 같은 곳에 헌병이 몇 명 서서 우리가 탄 차량을 향하여 마구 수신호를 보낸다. 진입하라는 건지 진입하지 말라는 건지 우왕좌왕 하는 사이 1명의 일병이 차에 올라 자신을 대한민국 육군 1사단 일병이라고 소개한다. 한명씩 주민등록증을 대조하며 검문을 마쳤다. 드디어 여기부터는 일반인 통제구역이다. 1사단 일병은 지금부터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사진, 동영상 촬영금지이며 모든 지시에 따라 행동해 줄 것을 당부한다.

 

파주시 장단면 대한민국 육군1사단이 관할하는 도라 OP가 위치한 도라전망대

 

도라전망대는 북한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진입을 위한 절차는 까다로웠지만 절도 있게 행동하며 지침을 밝히는 병사들에게 믿음이 갔다. 우리 일행은 1층 교육실에서 넒은 유리창밖으로 눈앞에 펼쳐진 북측 초소(현재는 기능을 상실함)와 개성공단과 기정동(북측 군사경계지역의 민간인 마을)마을 전경을 바라보며 짧은 브리핑을 들었다.

 

도라전망대 2층에서 바라본 북측 전경. 3층 야외 전망대에는 30여대의 망원경을 갖춘 전망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도라전망대에서 바라 본 1Km 전방에 개성공단과 9.19 군사합의로 이제는 기능을 상실한 북측 GP와 기정동 민간마을이 어렴풋이 보인다.

 

도라전망대에서 평화통일이 오면 아니 곧 대한민국의 나머지 반으로 합류될 북한의 모습을 1km 남짓 눈앞에서 접하니 벅찬 감동이 밀려와 눈물을 참아내기 어려웠다. TV에서 얼싸안고 땅을 치며 통곡하는 이산가족 상봉의 장면이 떠올라 울컥하는 격한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통일에 대한 간절함이 솟구치자 나도 모르게 다급히 교육실을 빠져나왔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