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앞으로 경제는 더 어려워지고, 고용도 위축될 거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설상가상 신규 채용의 문은 더 좁아지고 취업을 앞둔 청년들은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스스로 괴물이 되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동아일보

 

김애란 작가의 단편 소설 ≪자오선을 지나갈 때≫는 2007년에 발간된 소설집 『침이 고인다』에 실린 작품이다. 이 소설이 발표된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도 취업준비생이 처한 현실은 달라지거나 더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소설의 줄거리를 보면, 성적은 4.0이고 토익점수는 900이상이며 성격도 원만한데 30번 넘게 서류심사에서 떨어진다. 이유를 알 길이 없어 여러 가지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본다. 국문학과라서, 자격증이 없어서, 콘텐츠가 없어서, 얼굴이 인성인 여자라서, 다양한 이유를 찾아보지만 결국 그녀는 ‘나는 괴물이 아닐까’라는 자책하며 절망을 한다.

 

그녀는 집을 떠나 처음 한강을 건넜던 때를 떠올린다. 1999년 봄 재수생 시절, 노량진이다. 서울에 있는 재수학원에서 공부해야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 느꼈고, 부모에게 부담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상경했다. 처음 지하철 창문 너머로 바라본 한강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63빌딩은 신기했으며, 노량진은 ‘약속의 땅’처럼 느껴졌다. 갯바람 냄새가 나는 노량진에서 주인공 아영에게 할당된 공간은 고시원 책상 한 칸이었다.

 

국철에서 보이는 여의도

 

휴식을 취할 진짜 집은 어디에 있을까. 수능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 며칠 동안 잠만 잤다고 하는 아영의 짧은 서술은 그녀가 그동안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차갑고 두려운 서울을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서야 비로소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곳에서 편히 숙면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는 책상 위에 의자를 올리고 자야 했던 4인실의 4분의 1칸을 떠올리며 그 시절에는 어떤 공간이나 시간이 아닌 번호 속에 살았다고 회상한다. 수시로 울리던 알람 소리가 옆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편안하게 잠을 잘 여유도, 깊은 사색할 만한 심심함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바닥이 너무 딱딱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4인실은 너무 좁아. 네 명 모두 책상 위에 의자를 올린 뒤 연필처럼 자야했다. 여기저기서 부르르- 부르르- 하는 삐삐 진동음이 들려왔다. 이쪽에서 저쪽에서, 때론 간헐적으로 때론 연이어서, 마치 풀벌레가 소리 죽여 울듯, 우리 모두가 한 마리 풀벌레인 양, 어둠 속 파란 불빛들이 깜빡거렸다.

P. 128~129

 

번지르르한 약속과 헛된 희망을 심어주는 위로는 오히려 거부감이 든다. 작가는 엉터리 같고 부질없는 삶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중이 아닐까, 라고 묻는다. 우주 먼 곳 아직 이름을 가져본 적 없는 항성일 수도 있다는 소설 속 상상 속에서 작가는 아주 잠깐이라도 반짝이며 존재하고 있을 당신들의 이름을 애잔하게 부르고 있다.

 

나는 구파발에도 수색에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것은 서울의 크기가 컸던 탓이 아니라 내 삶의 크기가 작았던 탓이리라. 하지만 모든 별자리에 깃든 것처럼, 그 이름처럼, 내 좁은 동선 안에도 – 나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P. 118

 

노량진역

 

열차는 대방역을 지나 한강을 건너간다. 우리는 아직도 지나가는 중인가. 현재 진행형이란 말인가. 믿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 그렇다. '아직도'가 아니라 '그것보다 더'라는 말이 어울린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노량진으로 들어가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아니겠지, 달라지겠지’ 라는 다짐은 힘이 빠진 지 오래이다.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다음 역은 노량진, 노량진입니다.”

P.122

 

헛구역질이 나고 쓰러질 것만 같았는데 허공 사이로 커다란 손 하나가 불쑥 나타나 그녀의 손을 잡아 준다. 그녀는 처음으로 친구 민식이에게 마음을 열어 보인다. 서로 만나지만 공부에 방해가 될까 어설픈 약속 같은 것은 애당초 하지 않는다. 대학을 가면 자연스레 서로 연락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왜냐면 노량진은 모든 것이 지나는 곳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노량진역에서 본 여의도 전경

 

여의나루 한강 공원

 

“우리 63 빌딩에 가지 않을래?”

(중략)

가을 여의도는 아름다웠다. 나는 내 유일한 화장품인 ‘존슨즈 베이비 로션’을 바르고 여의나루에 나갔다. 사실 데이트는 시시했다. (중략) 우리는 63빌딩이 입장료를 받는지 몰랐다. 민식이는 들어가자고 우겼지만 나는 그냥 한강 둔치에 있자고 했다. 63빌딩 같은 거 안 봐도 상관없다고. 우리는 한강 앞에 나란히 앉았다.

P.142~143


노량진 학원가

 

자오선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지평선의 북쪽에서 머리 위를 지나 지평선의 남쪽을 연결하면 반원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자오선이라 한다. 그녀는 굳이 노량진을 지나가는 곳이라고 한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대학에 다닐 수 있다는 사실보다 더는 노량진 같은 곳에 혼자 있지 않아도 된다고 기뻐한다. 이제 노량진을 지나지 않아도 된다. 고난의 궤도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취직 시험에 실패한다. 1999년 자오선을 만났던 그녀의 삶은 7년을 돌아 취업이라는 고난의 자오선을 다시 만난다.

 

국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국철. 자고 나면 돌아오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배차시간이 긴 국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한 손에 토스트를 들고 지하에서부터 숨이 막히게 뛸 때면, 구두코에 머스터드소스와 케첩이 무어 있곤 했다. 그리고 속절없이 멀어져 가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 대체 나아진다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다.

(중략)

어디선가 아득히 ‘아영아, 내 손 잡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정신을 차린 뒤, 열차가 어디까지 왔는지 따져 보았다. 벌써 집 근처에 가까워져 있었다. 차고 깊은 가을밤. 지하철은 여전히 그리고 묵묵히 – 서울의 북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P.146~148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작가는 어디인지도 모르고 헤매는 수많은 청춘을 우주 공간으로 힘껏 밀어내어 소중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부여한다. 그녀가 무사히 집에 도착할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 시대가 만든 자오선을 지나가는 그녀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고 싶다. 언제나 현실은 차갑고 깊고 어두운 밤이지만 우리는 다시 자오선을 향해 묵묵히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김애란소설집 『침이 고인다』 수록된 단편소설 ≪자오선을 지나갈 때≫ 문학과 지성사 (2007)